우리가 크릴을 먹으면 남극물개가 굶주립니다

입력
2021.12.14 20:00
25면
80여 종에 달하는 크릴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생물총중량을 가지고 있다. 1㎥당 1만~3만 마리에 이른다. ©게티이미지뱅크

80여 종에 달하는 크릴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생물총중량을 가지고 있다. 1㎥당 1만~3만 마리에 이른다. ©게티이미지뱅크

크릴은 크릴새우라고도 하지만 새우는 아닌, 대형 동물성 플랑크톤입니다. 크릴 종류는 80종이 넘으며 남극해가 주 서식지인 남극크릴이 대표적입니다. 지구상에는 3억~5억 톤 규모의 크릴이 서식한다고 추정합니다. 여름철에는 수면 가까이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겨울에는 더욱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남극크릴은 남극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계 핵심종이자 고래에서부터 바다사자, 펭귄 등을 연결하는 주요 먹이자원이죠. 요즘 화두인 탄소흡수와 관련하여 남반구 바다는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다 하는데, 한 예로 크릴은 매년 12억 톤 규모의 탄소를 대기에서 제거하여 생태계 균형을 담당한다는 연구도 있더군요.

한편 크릴 남획과 관련하여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하겠다고 표방하고 있지만, 어획 흐름은 심상찮습니다. 중국은 가장 큰 크릴 어업선을 건조하고 있으며 2020년에만 11만8,000톤 이상을 어획했고, 러시아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앞서 나가는 국가입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2100년까지 크릴의 30%가 사라질 것을 예측하고, 전체 펭귄 개체수 또한 3분의 1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요.

다른 기각류처럼 남극물개도 한 마리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하렘을 형성하며, 이 투쟁 때문에 다 큰 수컷들의 수명은 매우 짧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른 기각류처럼 남극물개도 한 마리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하렘을 형성하며, 이 투쟁 때문에 다 큰 수컷들의 수명은 매우 짧다. ©게티이미지뱅크

남극에만 사는 남극물개는 가죽을 얻기 위한 남획으로 19세기까지 거의 절멸 위협까지 내몰렸다가 극적으로 개체수가 회복되었죠. 하지만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성체 암컷수는 30%가 감소했다고 하니 안정된 상태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 이 남극물개에게도 크릴은 제일 소중한 자원입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빙하 감소와 남획으로 크릴이 줄어드니 남극물개의 여름철 먹이자원이 사라지고, 번식 성공률도 영향을 받습니다.

혹독한 날씨와 얼음으로 인해 연구가 어려웠던 수컷 남극물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요. 새끼를 밴 암컷은 겨울철 남극에서 버티기 어렵고 분만 때문에 북쪽으로 이동하지만 수컷들은 남극에 남습니다. 이 중 80% 이상이 어린 수컷들인데, 짝짓기 동안의 과도한 투쟁 때문에 성체 수컷들의 수명은 극히 짧기도 하거니와 3년이면 성장하는 암컷과는 달리 수컷은 7년이나 성장해야 짝짓기에 참여할 수 있어 어린 수컷들 비율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남극에 머무는 수컷들의 이동을 인공위성으로 추적해보니 수심 1,000m 이내의 수온 2도 이하 지역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많은 지역에 머뭅니다. 바로 이곳이 남극크릴의 선호지역이라는 것이죠.

날이 추워지면 빙하는 북쪽으로 확장되며, 크릴은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고 이에 맞춰 남극물개도 180m까지 잠수하며 이들을 추적합니다. 물개과 동물들은 한 수컷이 여러 암컷을 차지하는 이른바 하렘을 형성하기에 수컷들 간의 투쟁은 곧 몸집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이 커다란 몸은 냉온에 대항하는 막강한 체온조절 능력과 함께 심해 잠수에 필요한 충분한 산소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죠. 겨울철 깊은 바다로 들어간 크릴을 여전히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겨울을 나는 것은 우리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죠. 제한된 지구 자원을 현명하게 나눠 써야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들의 몫인 듯합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대체텍스트
김영준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