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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법대 졸업생이 구더기 키우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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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만약 모든 사람이 다 사무실에서 일한다면 누가 악취 나는 쓰레기를 돌보겠어요."
자칭 '유기농 넝마주이' 마리나 트리 물리아와티(24)씨가 구더기를 키우는 이유다. 그는 지난해 욕야카르타(족자)의 가자마다대(UGM·우게엠) 법대를 졸업했다. 소위 명문대인 UGM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 등을 배출한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첫 국립대다.
그는 법대 졸업생이 흔히 걷는 길을 가지 않았다. "법대 졸업생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들이 택하는 진로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대신 구더기를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색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변에서 "명문대 법대 나와서 뭐 하는 짓이냐"고 말렸다. 그가 답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제가 할 겁니다."
전 세계 2위 쓰레기 배출국 인도네시아에 사는 그의 도전이 참신했다. 산처럼 솟은 쓰레기 매립장,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강은 인도네시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500여㎞ 떨어진 중부자바주(州) 보욜랄리(boyolali)에 사는 마리나씨를 설득 끝에 수차례 전화로 만났다. 쓰레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이 땅의 다양한 활동도 덤으로 살펴봤다.
-구더기를 키우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집이 시장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과일, 채소 등 음식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우기엔 집마다 악취가 진동했다. 안타깝고 슬펐다. 그러다 '저걸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왜 돌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정말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웠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싫어하고 피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처리 방법을 대학 졸업 뒤에 알게 됐다. 바로 구더기 양식이다. 마침 집 뒤에 빈 땅이 있어서 남편과 함께 시작했다."
마리나씨 부부가 키우는 구더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해충 똥파리의 구더기가 아니다. 통칭 애벌레(유충)가 구더기로 불리는 녀석의 진짜 이름(성충)은 익충(益蟲) '동애등에'다. 영어 이름은 블랙솔저플라이(Black Soldier Fly·BSF), 검은병정파리쯤 된다.
동애등에의 구더기는 10㎜의 작디작은 몸으로 사람에게 세 번 헌신한다. 인간들이 남겼으면서도 더럽다 취급하는 ①음식물 쓰레기를 환경친화적으로 정화한다. ②처리된 쓰레기는 다시 사람을 먹일 농작물을 키울 무공해 비료나 사료로 탈바꿈한다. ③제 몸은 닭과 오리, 물고기에게 던져져 인간들을 살찌운다. 한마디로 1석3조다. 이는 서부누사텡가라주 롬복의 구더기 농장을 취재하면서 확인했다.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음식물 쓰레기를 비료나 사료로 바꾸는 역할을 다한 구더기를 양계장, 양어장 등에 판매한 뒤 받는 돈이 주요 수입이다. 일반 사료보다 싸면서 단백질이 풍부한 구더기는 대체 사료로 차츰 각광을 받고 있다. 게다가 구더기가 만드는 무공해 비료는 농장의 관련 비용을 60%까지 줄여준다. 솔직히 우리 부부가 매일 회사에서 일하던 전과 비교하면 수입은 훨씬 많아졌다."
-어려움은 없나.
"매일 다섯 단계로 구더기를 키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음식물 쓰레기는 넘쳐나지만 분리 수거가 정착되지 않아 정작 구더기를 먹일 쓰레기를 구하는 일이 차츰 어려워지고 있다.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 그래도 가족은 응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최근 추세라면 구더기 양식 사업의 전망은 밝다. 마른 구더기를 중국, 한국, 영국 등으로 수출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환경을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싶다. 자연은 이미 인간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각자 상황에 맞게 환경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쓰레기를 어떻게 줄이지' 하는 일상의 고민이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치울까 골몰하던 소녀의 꿈이 구더기와 함께 시나브로 익어가고 있다.
동부자바주 말랑에 사는 유니타 레스타리 닝시(42)씨는 2015년부터 기저귀로 인공 정원과 꽃, 가방과 지갑을 만들고 있다. 출산 일주일 뒤 찾아온 이웃의 항의 때문이었다. "바나나를 심으려고 땅을 팠더니 기저귀 쓰레기가 수레 두 대 분량이나 나왔으니 더는 기저귀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저귀를 거기에 버린 적이 없었던 유니타씨는 억울했다. 이어 오래전 누군가 땅에 묻은 기저귀가 여전히 썩지 않은 사실에 놀랐고, 기저귀를 버리려고 강에 갔다가 산처럼 쌓인 기저귀 더미를 보고 더 놀랐다. 쓰다 버린 일회용 기저귀는 인도네시아 강을 오염시키고 배수로를 막아 홍수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다.
유니타씨는 '나라도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깨끗이 씻고 말린 뒤 장시간 끓인 기저귀로 꽃을 만들었다. 현재 생산하는 조화(造花)는 26가지에 이른다. 최근엔 가방 장인과 함께 가죽 대신 기저귀로 가방(약 1만3,000원)과 지갑(약 6,500원)을 만들고 있다. 튼튼하고 세탁이 가능하다는 장점 덕에 인기가 높다. 동료 10명과 매주 4,000개의 기저귀를 처리해 월 400만 루피아(약 33만 원)를 벌고 있다. "내가 생산한 쓰레기는 내가 책임진다"는 구호 아래 임산부에게 기저귀 공예 기술도 가르치고 있다.
동부자바주 바뉴왕이의 환경공동체 타만바루도 강에서 건지거나 각지에서 배송된 기저귀 폐기물로 벽돌과 보도블록, 화분 등 다양한 공예품을 제작한다. 사회적 기업 ㈜소프텍스인도네시아는 뜨거운 물을 이용한 열수(熱水) 공법으로 기저귀를 액체와 고체로 분리한 뒤 액체는 비료로, 고체는 벽돌로 만든다. 반둥공과대(ITB·이테베)는 기저귀로 집을 짓는 기계를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는) 독립마을을 꿈꾸며 2017년 설립된 서부자바주 반둥의 재활용업체 파롱퐁(parongpong)은 1년의 연구 끝에 담배꽁초로 재떨이와 화분, 야외용 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열수 공법 과정에서 생기는 액체로 살충제를 만드는 연구도 하고 있다.
굳이 재떨이를 만드는 건 아무데나 꽁초를 버리지 말라는 취지다. 담배 생산국 1위이자 세계에서 담배 소비자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는 매년 피우는 담배가 총 5조6,000억 개비로 이 중 4조5,000억 개비가 함부로 버려진다. 기저귀와 꽁초 외에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로 벽돌을 만드는 기업과 개인도 있다.
쓰레기가 마음의 양식으로
2016년 설립된 중부자바주 푸르발링가의 시민단체 '림바 푸스타카(Limbah Pustaka·쓰레기로 얻은 지식 모음)'는 쓰레기를 모아 가져오는 주민에게 책을 빌려준다. 오토바이에 달린 짐칸에 책을 가득 실은 '움직이는 도서관'이다. 설립자 라덴 로로 헨다르티(48)씨는 "환경을 살리고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호응을 얻고 있다"며 "아이들은 문학, 엄마는 요리, 아빠는 농업 분야 책을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동부자바주 수라바야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명칭마저 '플라스틱 쓰레기와 책을 교환한다'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3개를 가져오면 편의점에 비치된 책 한 권을 빌려주는 식이다. 책을 일주일 안에 반납하면 대나무 빨대를 준다. 책을 읽고 싶어도 도서관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쓰레기 처리에 동참하게 된다.
종류별로 쓰레기의 무게를 달아 일정 금액을 적립해주는 쓰레기은행(Bank Sampah·방 삼파)이 정착된 마을도 곳곳에 있다. 서부자바주 수방의 탄중왕이 마을은 한국의 새마을세계화재단의 지속적인 교육과 지원 덕분에 2년여 만에 '쓰레기 없는 마을'을 일궈냈다. 재단은 지난달에도 쓰레기 수거 트럭 5대를 마을에 기증했다.
사람들의 고민과 지혜, 독특한 아이디어와 노력이 어우러지면, 그래서 잘만 활용하면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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