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출제오류, 평가원이 내고 평가원이 검증했다?

입력
2021.12.13 16:45
수정
2021.12.13 21:3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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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평가원, 3개 학회에 자문
2개 학회에 평가원 간부 몸담아
"자문과정의 투명성 더 높여야"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출제오류 논란을 빚었던 생명과학Ⅱ 20번 문항과 관련,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의신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평가원 간부가 소속된 학회에 자문을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제자가 검증까지 한 셈이라 이해충돌과 공정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관련 전문가 풀(Pool)의 한계로 인한 것일 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10일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받아든 성적표에 생명과학Ⅱ 성적이 공란 처리돼 있다. 연합뉴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10일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받아든 성적표에 생명과학Ⅱ 성적이 공란 처리돼 있다. 연합뉴스


수험생 이의제기에 평가원, 3개 학회에 자문

13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수능 이후 수험생들이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자 평가원은 이 문제에 대해 한국과학교육학회, 한국생물교육학회, 한국유전학회 등 3곳에다 자문을 구했다.

이들 학회는 지난달 24일까지 평가원에다 20번 문항에 대한 자체적 평가 결과를 보냈다. 교육학회 2곳은 "문제에 이상이 없고, 기존 정답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한국유전학회는 출제 오류는 인정하되 전원 정답처리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문제없다' 학회엔 평가원 간부들이 포진

문제는 '이상 없음' 판단을 내린 2개의 교육학회에는 평가원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과학교육학회에는 평가원 수능본부장 A씨가 이사로 참여 중이다. 한국생물교육학회에도 평가원 수능출제연구실 소속 B씨와 C씨가 각각 교육과정위원과 학술위원으로 이름을 올려둔 상태다.

A씨와 B씨는 평가원과 수험생 간 소송에서 평가원 측의 소송 수행자이기도 하다. 평가원 선행교육 예방연구센터 소속 D씨도 생물교육학회에서 운영위원과 교육과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수능에서 출제오류 문제가 제기된 생명과학Ⅱ 문제. 종로학원 제공

올해 수능에서 출제오류 문제가 제기된 생명과학Ⅱ 문제. 종로학원 제공


평가원 "공정성 위해 3개 학회에 자문"

평가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풀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겹칠 수밖에 없다는 반박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연구자들은 이런저런 학회에 적을 두고 있기에 이걸 문제 삼으면 어느 학회에도 자문을 구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의 가장 큰, 대표적 학회가 한국과학교육학회이고, 좀 더 전문적 의견을 듣기 위해 자문기관에 한국생물교육학회를 추가했으며, 유전학계 대표학회인 한국유전학회까지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것이다.

유전학회만 "문제 자체가 이상" 인정

하지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학회의 답변에서 이상한 점을 지적했다. 교육학회 2곳이 평가원에 회신한 내용은 풀이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이 '문제 자체는 이상 없다'는 식의 짤막한 결론만 실려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한국유전학회 의견을 보면 문제 자체에 이상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있다. 다만 문제 자체에 이상이 있으니 모두 정답으로 인정해줄 것이냐, 아니면 그래도 답을 고를 수 있는 수준은 되니 평가원 정답을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유보했다.

평가원 자문 과정의 투명성 더 높여야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평가원이 억울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평가원 자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이 어떤 의견을 얼마나 냈는지를 좀 더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유전학회는 그나마 "전공자 7인을 위촉해 위원회를 구성한 뒤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으나, 나머지 2개 교육학회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생명과학Ⅱ 출제오류 소송에서 수험생 측 변호를 맡은 김정선 변호사는 "지금으로선 평가원 측 사람이 관여했는지 여부는 물론, 생명 교육 담당 고등학교 선생님이 썼는지, 지구과학 담당 초등학교 선생님이 썼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평가원은 출제오류 논란으로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생명과학Ⅱ 성적을 '기존 정답 인정'과 '전원 정답 인정' 두 가지 종류로 만들어 미리 대학들에 제공하기로 했다. 17일 오후 1시30분 법원의 1심 결정이 나온 뒤 하루 만에 수시 합격자를 선별해 발표하기 쉽지 않다는 대학 요청을 받아들이면서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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