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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일회용 빵 칼, 요청할 때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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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25>일회용 빵 칼
연말, 케이크의 시즌이 돌아왔다. 케이크에는 으레 플라스틱 조각이 딸려온다. 일회용 칼이다. 케이크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쯤, 빵 칼 갖춘 집이 적고 케이크가 귀한 음식이라 케이크의 단면을 예쁘게 자르기 위한 용도로 제공됐다.
그러나 이제 일회용 칼은 한 번 휘둘러 보지도 않고 버리기 일쑤다. 집에서는 가정용 칼로 자를 수 있고, 집밖에서도 식당·숙소·파티룸 등엔 칼이 구비돼 있다. 반드시 필요할 땐 사무실에서 먹을 때 정도인데, 그 빈도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홀케이크(조각케이크가 아닌 케이크 전체)와 롤케이크 등에 여전히 일회용 칼이 의무적으로 딸려온다. 한 조각의 플라스틱도 불편한 소비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 최근 소비자들이 ‘빵 칼 반납 운동’을 진행했다.
케이크 매출 상위권을 달리는 업체들의 일회용 칼 지급 현황을 확인해봤다.
파리바게뜨(파리크라상)와 뚜레쥬르는 롤케이크ㆍ파운드케이크 제품에 일회용 칼을 포함시켜 포장한다. 제품을 구매하기 전 포장을 뜯어 일회용 칼만 빼낼 수 없는 구조다. 제품을 사려면 일회용 칼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두 업체는 롤케이크처럼 아예 동봉돼 있지는 않지만, 홀케이크를 판매할 때도 묻지 않고 빵 칼을 준다. 별다른 판매 방침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초의 개수는 물어보지만, 빵 칼 지급 여부를 묻진 않는다. 마트에서 무상제공이 금지된 일회용 비닐봉투를 “필요하냐”고 묻고 판매하는 것과 다르다. 결국 소비자가 "필요 없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 한, 일회용 칼을 받게 된다.
투썸플레이스의 홀케이크를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역시 별도 방침이 없어서 소비자가 먼저 빼달라고 하지 않는 한 일회용 칼을 받게 된다. 특히 투썸플레이스의 일회용 칼엔 성냥이 포함되어 있어서, 성냥이 필요하다면 칼까지 함께 받아야 했다.
스타벅스는 홀케이크에 나무 소재의 일회용 칼을 지급하고 있다고 안내했다. 스타벅스 홀케이크는 연말에만 주문 제작 형식으로 판매해서 실물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김정은(38)씨와 전소정(38)씨는 지난달 13~28일 빵 칼 반납운동을 진행했다.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 칼을 모아 같은 달 29, 30일 이틀에 걸쳐 편지와 함께 파리바게뜨 고객서비스팀으로 보냈다. “파리바게뜨 롤케이크 안의 일회용 칼 포장을 빼고, 요청한 사람에게만 지급하도록 판매 방식을 바꿔달라”는 게 주 요구사항이다.
파리바게뜨는 주요 제품인 ‘실키롤케이크’만 따져도 최근 10년 판매량이 2,600만여 개에 달한다. 1분에 5개꼴로 팔린 셈이다.
김씨와 전씨는 '빵 칼 반납운동'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리고, 다른 소비자들의 동참을 독려했다. 이에 김씨 등에게 칼을 전달하거나, 개인이 직접 파리바게뜨 고객서비스팀으로 택배를 보내는 방식의 호응이 이어졌다. 또 전국 제로웨이스트샵, 공공도서관, 생활협동조합 매장 등 41곳이 수거 거점 역할을 하고 방문 고객들로부터 칼을 모아 파리바게뜨로 보내기도 했다.
김씨와 전씨 앞에 132개가 모였고, 수거 거점에서 112개가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개인이 직접 보낸 것은 전씨가 SNS로 직접 확인된 것만 97개에 달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칼과 함께 편지도 보냈다. SNS에는 "저는 서울에 사는 '빵순이'입니다. 빵은 먹고 싶은데 굳이 필요 없는 플라스틱 칼은 받고 싶지 않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소비자가 필요한 경우에만 빵 칼을 선택해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불필요한 플라스틱 소비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편지 인증샷들이 올라왔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도 이에 동참해 편지를 보냈다. "보통 케이크를 집에서 먹기 때문에 식칼로 잘라 먹고, 일회용 칼은 뜯지도 않은 채 버립니다. 애초에 필요한 사람만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요."
김씨는 “평소 일회용 칼을 모아 제과업체에 돌려줬지만 개인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며 “본사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운동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소비자 개인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기업과 제과업계 측면에서는 막대한 양”이라며”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달업계는 그간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니’ 일단 주고 봤던 것을 ‘반드시 필요할 때만’ 제공하도록 일회용품 지급 시스템을 바꾸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
국내 대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3사는 지난 6월부터 ‘일회용 수저 안 받기’를 앱 기본값으로 바꿨다. 기존에는 ‘일회용품 제공’이 기본이고 ‘받지 않겠다’고 체크를 해야만 제공하지 않았는데, 판매 시스템을 거꾸로 바꾼 것이다. 환경단체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에서 배달 쓰레기 감축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결과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한달 일회용 수저 사용량이 6,500만 개나 줄었다. 올해 6월 기준, 배달의 민족 이용자 71.3%가 주문할 때 일회용 수저를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지난해 6월 15.8%보다 55.5%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요기요는 13%에서 62%로, 쿠팡이츠는 21%에서 76%로 늘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소비자 반발이 크리라 우려하지만 사전 홍보를 잘하고 판매 시스템만 편리하게 바뀌면,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일회용품을 감축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일부 카페 프렌차이즈에서 ‘플라스틱 빨대는 필요할 때만 사용해달라’는 안내 팻말을 붙이는 등 '일회용품 지급의 기본값'을 바꿔나가는 움직임이 많다.
빵 칼 반납운동을 벌인 소비자들을 대신해, 업체 측에 계획을 물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연말부터 직영점에서 홀케이크를 판매할 때 칼이 필요한지 묻는 판매 방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롤케이크 포장에서 칼을 제외하는 것과, 가맹점까지 새 판매 방침을 확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가맹점주와 고객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캠페인 홍보와 가맹점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크리스마스 전에 직영점에서 일반 케이크부터 우선 적용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전국 가맹점과 롤케이크 제품까지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뚜레쥬르 역시 “직영점부터 도입해 가맹점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두 업체 모두 전체 점포 중 직영점 비율은 약 1%뿐이어서 당장 실효성은 크지 않다. 2019년 기준 파리바게뜨는 3,380개 점포 중 42개, 뚜레쥬르는 1,291개 점포 중 13개만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부정적인 업체도 있다. 투썸플레이스는 “고객의 항의가 생길 수 있어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대체 소재를 변경하는 것 역시 식품에 닿는 부자재여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2년 전부터 나무 소재의 칼을 도입해 일회용 플라스틱을 감축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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