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인구지진(Age-quake)’이란 말은 영국 인구학자이자 작가인 폴 월리스가 1999년 자신의 동명 저서에서 처음 만든 말이라고 한다. 인구감소와 고령사회가 몰고 올 지구 차원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지진에 빗댄 것이다. 월리스는 인구지진 충격이 실제 지진으로 치면 리히터 규모 9.0에 달할 것이라고 비유했다. 인구감소와 급격한 노령화를 축으로 한 인구지진은 특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2020년 전후부터 본격화하며, 우리나라도 큰 충격을 입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 1999년엔 우리나라에도 이미 가파른 인구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합계출산율은 통계가 시작된 1993년 1.654를 기록한 이래 매년 감소해 1999년엔 1.425까지 낮아졌다. 2018년엔 0.977로 마침내 1.0 미만으로 추락한다.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비율인 고령화비율 상승세에도 가속화 조짐이 뚜렷했다. 1999년 6.9%였던 게 2008년 두 자릿수(10.2%)에 진입했고, 이후 상승세가 더 가팔라져 2020년엔 15%까지 돌파했다.
▦ 2006년부터 출산장려정책이 시행됐다. 2010년을 전후해선 인구지진이라는 말이 정책용어로 공식 등장하면서 종합적인 대응책이 강구됐다. 하지만 수백조 원대의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2020년엔 0.837까지 낮아지는 등 인구구조는 속수무책으로 지진 상황으로 치달았다. 9일 발표된 통계청의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에 담긴 현재 인구지진 상황은 충격적이다.
▦ 당장 올해부터 총인구가 감소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출산과 이민 유입 등이 줄며 2019년 예측보다 감소시점이 무려 8년이나 앞당겨졌다. 국내 총인구도 2070년엔 3,700만 명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측됐다. 또 그땐 지난해 72%였던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46% 수준으로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비율은 2049년 40%까지 치솟을 걸로 분석됐다. 인구지진은 저성장, 양극화, 부동산, 노인문제, 연금위기 등 육중한 파장을 동반한다. 현 정부는 어렵고, 다음 정부라도 대응책을 바짝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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