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사는 길" 논문 부정행위 공표하는 日대학

입력
2021.12.11 04:40
13면

<52> 일본의 대학 사회와 연구 공동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대선 후보와 가족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은 일본과 달리 한국 대학 사회와 정치권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의 연구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대선 후보와 가족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은 일본과 달리 한국 대학 사회와 정치권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의 연구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대통령 선거 국면의 논문 스캔들을 생각하다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한둘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논문 스캔들이 신경이 쓰인다. 한 대선 후보가 쓴 논문은 적절한 인용 표시가 없어 표절이란다. 또 다른 대선 후보의 부인이 쓴 논문은 내용이 엉성할 뿐 아니라, 영문 제목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가 포함되어 있어서 학술적으로 도저히 인정할 만하지 않다. 학위 논문을 둘러싼 추문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저 학위를 손에 넣고 싶은 ‘가방끈’ 욕심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많고,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함량 미달 논문으로 구설에 오르는 일도 적지 않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엉터리 논문을 쓴 당사자보다 그런 논문을 근거로 학위를 주는 대학의 문제가 훨씬 더 크다. 인터넷 시대에 논문 표절은 해결하기 어려운 골칫거리다. 당사자가 표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심사 과정에서 걸러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자동 번역기를 돌린 양 우스꽝스러운 영어가 버젓이 제목에 표기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연구자라면 누구나 모욕감을 느낄 만한 심각한 사안이다. 딱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읽었다면 쉽게 발견할 만한 어처구니없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도 핑계를 대며 검증에 소극적인 대학의 태도가 의아하다. 이러다가는 ‘대학은 학위 장사꾼’이라는 세간의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자인하는 모양새가 될 판이다.

일본 대학의 논문 부정 행위 공표, 장기적으로는 살길이라는 인식

얼마 전 일본의 한 사립 대학에서 자기 대학 소속 교수의 논문 도용과 징계 사실을 공표했다. 이 대학 웹사이트에 공개된 자세한 문서에 따르면, 구체적인 경위는 이렇다. 지난해 이 교수가 단독 명의로 발표한 학술 논문의 도용 가능성을 지적하는 제3자 고발이 있었다. 그리고 내부 감사 결과 이 논문이 이 교수가 지도한 학생의 석사 학위 논문과 70% 이상 표현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취 조사에서 이 교수는 “학생의 논문이 매우 훌륭했는데 이를 발표할 의향이 없다고 했다. 내 이름으로라도 발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항변하면서도, 저자명을 적절하게 명시하지 않은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이 교수의 논문 도용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만, 스스로 치부를 공개하고 당사자 처분 및 재발 방지 조치를 결의한 만큼 대학 측은 연구 윤리를 중시한다는 명분은 챙겼다. 일본의 대학에 10년 이상 몸담으면서, 대학에서 학위 논문 심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 공표하고 학위를 취소하는 일을 왕왕 보았다. 당장은 부끄러운 오점을 드러낼지언정 연구 윤리와 엄정한 심사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연구 조직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논문 스캔들을 둘러싼 대학의 소극적인 대응에는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연구 조직의 공적 명분을 포기하는 것은 조직의 존립 근거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호사가들은 대선 후보가 관련된 만큼 당파적 판단 때문에 대응을 머뭇거리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더욱 걱정스럽다.

일본의 대학 사회 역시 많은 고민과 문제를 떠안고 있다. 출산율 감소로 대학 입학 정원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사실은 한일 대학 공통의 위기 의식이다. 실제로 각 대학의 지원자 모집 경쟁은 고3들의 입시만큼 치열하다. 높은 취업률, 재학 중 유학 지원, 외국어 자격증이나 기술 자격증 취득 지원 등 대학의 홍보 문구가 취업 학원을 방불케 하고, 대학 교수가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영업’을 뛰는 의무를 지기도 한다. 입시 지원자 수나 취업률 등 양적인 성과 지표를 완수하기 위해 허덕이다 보면, 연구 교육 기관의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다.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개혁 과제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교하자면 일본의 대학과 교수진은 교육과 연구라는 본분에 관한 한 충실하다는 인상이 있다. 예전에 한 일본인 동료에게 “한국의 대학 교수는 정치가나 관료로 전업하는 경우가 왜 그리 많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던 인사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거나 행정부 수장으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대학 교수가 정치가나 관료로 전업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인으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고, 서로 다른 분야의 정보 이동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어떻게 보자면 학문의 상아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려 하지 않는 일본 대학 사회의 경직성도 문제다. 다만, 이런 완고하고 보수적인 태도가 연구 활동의 객관성과 명분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연구와 관련한 부정 행위는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자정 노력에 힘써야 연구 윤리라는 최우선 명분에 금이 가지 않는다.

연구 공동체의 책임있는 자세를 고민해야

일본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연구회’라는 연구 모임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모바일 미디어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일반 청중으로 참가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십수년 동안 함께 연구 활동을 벌여 왔다. 일본 각지 대학 교수들이 중추 역할을 하지만, 기업에 소속된 연구자, 혹은 기업의 비연구 부서에서 이질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가 등도 참여하고 있다. 연구회에 합류한 뒤 함께 펴낸 학술 서적이 네 권인데, 이 중 두 권은 영어권에서 출간되었다. 이 연구회의 학술적 전문성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한편 필자가 종종 얼굴을 내미는 ‘현대 풍속 연구회’는 무려 1976년에 발족한 연구 모임이다. 연구회를 지원하는 기금이나 스폰서 기업도 없이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십시일반으로 40년 넘게 건재했다. 이 연구회는 참가자의 배경이 더욱 다양해서, 대학 교수나 연구자, 학생은 물론이요 회사원, 비영리단체의 활동가, 가정 주부 등도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에 참가한다. 연구자로서는 이렇게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확이다.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기회가 날 때마다 이 연구 모임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적을 두지 않은 연구자가 못지않게 훌륭한 학술적 성과를 인정받는 일도 종종 있다. 예전에 근무했던 단과 대학 부속 도서실의 사서는 정식으로 학위를 받은 적은 없지만, 오래된 고서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해 서적의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을 학술지에 여러 편 게재한 연구자였다. 어떻게 보자면 제도적, 조직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전문 지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연구 공동체 본연의 모습이다. 적어도 일본에서 필자가 몸담은 인문사회학적 미디어 연구 분야에서는 지금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연구 공동체가 기능하고 있었고, 덕분에 제도화된 연구 조직의 관료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연구 활동이 가능했다. 연구 공동체의 나아갈 길에 관료적, 당파적 논리가 개입하는 것은 백 번 양보해도 좋을 것이 없다. 사회 현상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연구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객관성과 투명성을 생명줄로 삼는 전문 지식의 사회적 신뢰가 결정적으로 훼손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 사회와 정치권의 거리감이 너무 가까운 점에 위태로움을 느낀다. 연구 공동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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