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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과 교제살인 부실대응, 추상적 현장대응 매뉴얼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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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미숙한 대응으로 시민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치안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천 층간소음 분쟁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두 명은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데도 피해자를 방치한 채 현장을 이탈했다가 결국 해임 처분을 받았다. 신변보호 중인 여성의 스마트워치 신고를 받고 서울 중구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엉뚱한 장소를 수색하다 교제 살인을 막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경찰의 부실대응 이후 경찰 수뇌부는 시스템 개선을 약속하는 등 대책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부실대응을 향한 비판이 강력대응이라는 반동으로 현실화하면 자칫 과잉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내고 경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한 양홍석 변호사는 “추상적 경찰 대응 매뉴얼을 손보지 않으면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 개혁 전문가인 양 변호사를 만나 경찰 부실대응 원인과 대책을 짚어봤다.
-인천 층간소음 난동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 조치는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
“일단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의 자세나 자질이 문제겠지만 112신고 시스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코드제로가 부여되는 강력 사건의 경우 신고와 동시에 경찰차 여러 대가 출동해 오히려 부실대응 논란이 적은 편이다. 층간소음 사건의 경우 일반적 신고로 알고 출동했지만 현장에서 흉기를 들고 위해를 가하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녀 경찰관이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여경이 현장을 이탈하고 남경 또한 부실하게 대응한 것은 분명히 개인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일반적 신고의 경우 2인 1조로 움직이는 112 신고 대응 시스템의 한계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칼부림이 나면 경찰관 두 명이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경찰력을 충원해서 3인 1조로 움직인다든지 보다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선할 여지는 없나.
“현재 가용 경찰이 대략 15만 명가량인데 인력 구조를 개편하면 절대 인원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정보나 경비, 보안 파트에 상당한 인원을 배정하다 보니 실제 치안 현장 인력은 부족하다는 불만이 내부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다소 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보ㆍ경비ㆍ보안 파트의 인원을 재배치한다면 3인 1조 출동 시스템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대부분의 112신고는 두 명이 출동해도 충분히 처리 가능한데 인천 사건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3인 1조 출동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자칫 효율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그렇다고 현재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유사 사건 재발에 대한 국민 불안이 커지지 않겠나.
“인천 사건의 경우 현장 경찰관의 상황 대처 능력부터 따져 봐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투는 상황이라면 우선 양측을 분리시켜야 하고, 이후 매뉴얼에 따라 경찰관이 단계별로 조치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가해자가 칼을 들었을 때 경찰관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응 방법이 매뉴얼에 나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장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라는 식으로 추상적 원칙으로는 천차만별인 현장상황에서의 대응은 결국 경찰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균적인 경찰관들의 판단, 대응능력을 고려해서 현장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매뉴얼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즉 루틴한 업무처럼 해줬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다.”
-현재 경찰에는 구체적 현장 대응 매뉴얼이 없다는 것인가.
“총기를 비롯한 경찰 장구 사용과 관련된 매뉴얼이나 현장 대응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추상적인 교범이다. 순응-소극적 저항-적극적 저항-폭력적 공격-치명적 공격의 5단계에 따라 사용 장구 및 대응 방안이 예시돼 있다. 그러나 2단계인지 3단계인지는 현장 경찰관들이 책임지고 판단을 해야 한다. 상황을 구체화시키고 그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을 거듭하는 노력이 현재로서는 부족하다. 10년 차든 1년 미만 경찰관이든 현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베테랑이 가면 해결되고 초보가 가면 문제가 생기는 시스템에서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 출동한 여경은 정식 발령이 나지 않은 시보로 나중에 확인됐다. 시보를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시보도 기본 교육을 받은 경찰이고 현장 경험도 해야 한다. 다만 숙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투입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천 사건은 시보의 부적절 내지는 부족한 대응으로 피해가 현실화한 경우다. 시보를 2인 1조에 묶어 사수ㆍ부사수 개념으로 교육하는 현재 시스템의 적절성을 고민해야 한다. 시보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매뉴얼을 바꿀 때가 됐다고 본다.”
-문제의 두 경찰은 결국 해임됐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현장 경찰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과가 너무 중대해서 책임을 중하게 묻지 않으면 국민적 비난이 뒤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해임은 경찰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만 개인에 대한 책임과 별도로 향후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경찰 내부에서 진지하게 해야 된다고 본다. 그동안 경찰에서는 무슨 일만 터지면 징계로 해결하고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말았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징계나 해임으로 해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구 교제살인 사건에서는 경찰이 최초 스마트워치 신고를 받고 엉뚱한 장소로 출동해 골든 타임을 놓쳤다. 경찰이 뒤늦게 스마트워치 시스템 개선을 약속했는데, 어떻게 이런 허술한 테크닉이 방치됐는지 의문이다.
“신변보호를 요청한 시민에게 제공하는 스마트워치를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기본이다. 경찰을 부를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이 적절한 대응을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진 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출동 경찰관들이 정확한 신고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그동안 부족했다. 예를 들어 휴대폰 위치 정보나 스마트워치 정보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내지는 주변 CCTV를 동시에 띄워서 확인하는 방법 등 가용한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스마트워치뿐만 아니라 신변보호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마트워치의 경우 GPS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술적 보완을 위해서는 신변보호 요청자의 동선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신변보호를 요청하면서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 테니까 생활 반경과 동선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보다 촘촘한 신변보호가 가능할 것이다. 가령 당사자가 몇 시에 퇴근하고 어떤 경로로 귀가하는 등의 동선을 파악한다면 주요 순찰 포인트를 구축할 수도 있다. 평소 생활 스타일이나 동선 정보에다 스마트워치 위치정보, 개인 휴대전화 정보까지 종합적으로 활용하면 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경찰청은 부실대응 논란 이후 여러 가지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 사건 현장의 적극 대응을 유도하기 위해 경찰관직무집행법에 형사면책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양 변호사는 “경찰관은 이미 정당한 직무집행과 관련해 민형사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면서 법개정 추진을 비판했다.
-경찰의 잇단 부실대응 이후 흉기 난동 현장에서 경찰이 총기를 발사해 피의자를 제압한 사건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강력대응으로 자칫 인명 살상 등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할 때는 직을 건다고들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하는데, 문제는 총을 쐈을 때 과연 다리 부위만 정확히 맞혀 제압할 수 있느냐다. 경찰관들도 확신이 없다 보니 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확한 부위를 맞히려면 부단한 훈련이 필요한데 1년에 20, 30발 훈련으로는 턱도 없다. 더구나 현장 상황에 따라 예기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서는 오·남용과 불가피한 대응을 구분하고 평가할 시스템이 없다. 총기뿐 아니라 테이저건이나 경찰봉(삼단봉) 사용에서도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상황별 매뉴얼이 정확하게 갖춰져 있어야 경찰의 적정한 대응을 유도할 수 있다.”
-2019년 도입한 5단계 대응 매뉴얼로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대응 매뉴얼이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게 문제다. 소극적 저항 다음이 적극적 저항인데 예를 들어 경계선 정도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없다. 인천 사례처럼 가해자가 갑자기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을 어떻게 규정할지, 여기에 어느 정도 대응을 할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 매뉴얼을 만들어 훈련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 매뉴얼을 국민에게 적극 공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범죄집단이 악용할 소지도 없지는 않겠으나, 어떤 경우에 경찰의 총기 사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극단적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형사적 면책’ 규정을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신설하는 개정안을 두고 시민사회는 물리력 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경찰은 적극 대응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상반되게 주장하고 있다.
“우선 경찰관이 정당한 직무집행을 했을 때 형사처벌 위험이 거의 없다. 정당한 공무집행은 형법상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 아예 처벌 대상이 아닌데 형사 책임 감면을 얘기할 이유가 없다. 다만 경찰은 사후 책임이 두려워 현장 대응에 소극적이라고 반박을 한다. 형사 책임이 없는 상황에서 책임은 민사, 즉 손해배상 책임과 징계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사상 손해배상의 경우는 2018년 경찰청이 경찰 법률보험을 도입해서 대비를 하고 있다. 직무집행과 관련해 경찰관이 소송에 휘말릴 경우 변호사 비용과 합의금 등을 보험에서 모두 제공하고 있다. 올 10월에는 소송 지원제도도 직무집행법에 포함시켰다. 민사 책임도 제도적으로 커버되기 때문에 남는 것은 징계 책임 문제다. 전 부처를 통틀어 경찰의 징계 수위가 가장 높은 게 사실이다. 경찰 내부에서도 과도한 징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현장 경찰의 적극적 대응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민형사 책임이 아니라 과도한 징계인 셈이다. 형사 면책 조항은 법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찰 부실대응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력대응 요구와 오·남용 우려가 교차한다. 과거 강력대응은 실제 물리력 남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악순환을 근절할 근본적 대책은 없나.
“치안 공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우리 나라의 치안환경은 매우 양호한 편이다. 국민과 시민들이 경찰 활동에 매우 협조적인 분위기도 형성돼 있다. 경찰로서는 현장 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등 업그레이드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부실대응을 향한 비난이 쇄도한다고 강력대응이나 형사 면책을 요구할 일이 아니다. 경찰 수뇌부에 공포에 기반한 경찰 활동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 같은데 시대착오적 생각이다. 손쉬운 길을 찾을 게 아니라 교육 훈련을 강화하고 매뉴얼을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1박 2일 정도의 시간 때우기 훈련으로는 안 되고 1년에 한두 달씩 강도 높은 훈련을 거듭한다면 경찰 체질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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