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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싸게 내놔도 위층 소리 듣더니..." 이사도 못 가는 층간소음 난민

입력
2021.12.10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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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낙인에 싸게 내놔도 안 팔려
이사 후 또다시 층간소음에 시달리기도
코로나로 분쟁 폭증… 초기 6개월 골든타임

층간소음 삽화=박구원 기자

층간소음 삽화=박구원 기자

경기 김포에 사는 김모(41)씨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비워두고 다른 곳에 전셋집을 구해 이사 가기로 했다. 매매 계약이 번번이 무산되고 있는 탓이다. 김씨는 “싼 가격에 내놔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며 “그러나 위층에서 쿵쿵대는 소리에 모두 고개를 흔들며 돌아갔다”고 말했다. 밤낮으로 쿵쿵거리는 소리에 주말엔 집 밖으로 돌았지만 쌀쌀해진 요즘은 한계가 있고, 또 소음 차단 이어폰을 장시간 착용하다 보니 귀에 염증도 얻은 김씨다. 그는 9일 “집이 팔리길 기다리다가는 내가 뉴스 주인공이 될 것 같아 우선 여기서 벗어나고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에서 있었던 ‘층간 소음 살인미수’ 사건으로 아파트 매매 체크리스트 목록에서 ‘층간 소음’ 항목이 우선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생활이 편리한 입지, 아름다운 전망, 저렴한 가격 등의 조건을 충족시켰더라도 층간 소음이 있는 집이면 시장에서 아예 배제되는 분위기다.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나 매수자한테 층간 소음 이슈를 나서서 알릴 필요는 없지만, 먼저 물어오는 경우에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최근엔 열이면 열, 층간 소음 문제를 가장 먼저 묻고, 직접 확인까지 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층간 소음 때문에 매물로 나온 근처 아파트가 5, 6채 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며 “위층에 시달렸던 사람은 꼭대기 층을 찾고, 아이가 있는 집은 1층을 우선 찾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향은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욱더 짙어졌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이야기다. 실제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층간 소음 민원은 4만2,250건으로 전년(2만6,257건) 대비 1.6배 증가했다.

‘윗집=가해자, 아랫집=피해자’ 공식도 깨지고 있다. 윗집 소음만 체크한 뒤 입주했다가 부실한 방음벽 때문에 옆집과 아랫집에서 오는 소음, 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랫집 때문에 낭패를 겪는 경우도 빈번하다.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도 아랫집 때문에 이사를 마음먹은 경우다.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아랫집을 이웃으로 더 두고 지냈다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A씨는 “아랫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시끄럽다고 항의하는가 하면, 올라와서는 아이 앞에서 욕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실제 이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민감한 이웃이 아랫집으로 이사 왔다는 소문이 나면서 매매로도, 전세로도 집이 나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세보다 4,000만 원 싸게 집을 내놓아도 집이 나가지 않아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층간 소음 난민이 따로없다”고 하소연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보통 아파트 층간 소음 갈등에서 소음문제는 20%에 그치고 감정문제가 80%를 차지한다“며 ”상호 감정이 악화하기 전에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창원=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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