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을 리뷰해봤다

입력
2021.12.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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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같이 출연했던 김선영 배우에게는 예은이라는 딸이 있고요, 우리 장윤주 배우한테는 리사라는 딸이 있고, 저는 연두라는 딸이 있어요.

그 딸들이 폭력의 시대나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 당당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영화이고,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데, 저희가 코로나 시국에 개봉을 해서 많이 전해지지 못한 것 같아요 아쉽게도... 그렇지만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더 많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배우 문소리, 42회 청룡영화상여우주연상 수상소감 중

Her View : 여성의 관점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헤더 바(왼쪽) 휴먼라이츠워치 여성권리 부문 부디렉터와 24년 동안 여성 폭력 피해자를 지원한 경험이 있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만났다. 이번 만남은 지난달 25일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이뤄졌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헤더 바(왼쪽) 휴먼라이츠워치 여성권리 부문 부디렉터와 24년 동안 여성 폭력 피해자를 지원한 경험이 있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만났다. 이번 만남은 지난달 25일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이뤄졌다. 한지은 인턴기자


<35> "전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다"
(12월 2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는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이었습니다. 특별한 주간을 가진다고 해서, 8년 사이 8.2배 증가한 가정폭력의 증가세가, 남성이 94.1%를 차지하는 불법촬영 범죄 가해 비율이, 한해 1만 건에 가까운 데이트 폭력 건수가 줄거나 멈추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기간만큼은 '젠더 폭력' 희생자를 애도하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리뷰합니다.

■ '교제 살인'을 데이트 폭력으로 축소한 여당 대선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4일 파트너 폭력에 대한 특별 대책을 강구하겠다면서 과거 조카의 교제 살인 변호 이력을 사과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가족 중 유일한 변호사인 본인이 변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는 건데요. 하지만 이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지난 한 주 내내 역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와 그의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두고 '데이트 폭력 중범죄'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렸다는 점과, 조카의 교제 살인을 당시 이 후보가 '심신미약'으로 변호했다는 점에서요. 과연 이 후보는 앞으로 젠더 폭력에 대한 엄중한 원칙과 정책으로 진정성을 보여줄까요?

■ 중구 오피스텔 '교제 살인' 피의자는 35세 김병찬

지난 주 허스토리에서 다뤘던 '중구 오피스텔' 교제 살인의 피의자 김병찬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됐습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살인 혐의보다 형량이 무거운 특가법상 보복범죄 살인 혐의에 스토킹처벌법 등 8가지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이처럼 옛 연인 살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스토킹과 파트너 폭력 범죄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들 범죄 피해자는 성폭력도 함께 당하지 않는 한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국선변호사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한국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젠더 폭력' 없다는 제1야당 대표

2022년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을 맞이한 한국의 상황은 참담합니다. 제1야당 대표는 전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까지 들어 여성 대상 범죄에서 성별은 중요치 않으며 개인의 일탈이라는 논지를 전개합니다. 데이트 폭력 등 최근 발생한 여성 대상 범죄를 '젠더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를 부인하는 겁니다. 허나 여전히 어떤 범죄는 압도적으로 여성이 피해자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젠더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은 유엔 등 국제 기구가 논쟁의 여지 없지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 이수정 경기대 교수, 윤석열 국민의힘 선대위 합류

지난달 29일, 이수정 교수가 윤석열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공개적으로 "이 교수 영입을 확실히 반대한다"고 했고, 인선 발표 전에도 "우리 당이 견지했던 방향성과 일치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강하게 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아동 인권 보호에 앞장선 이 교수의 행보가 2030 남성을 결집하는 국민의힘 선거 전략과 상충된다는 게 이 대표의 논리였습니다. 이 교수의 합류로 안티페미니즘 목소리를 높여 온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은 험악합니다. "2030 남성은 이대로 버려지는 거냐"는 건데요. 여성·아동 대상 폭력과 맞서 싸워온 이 교수의 영입을, 대체 왜 그들은 '2030 남성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요?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춘숙 의원실에서 정춘숙(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헤더 바(오른쪽) HRW 여성권리부문 디렉터가 대담을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춘숙 의원실에서 정춘숙(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헤더 바(오른쪽) HRW 여성권리부문 디렉터가 대담을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 맞아 만난 '여.돕.여'

그러던 중 해외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허스토리에 전해졌습니다.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던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지난 6월 충격적인 한국의 디지털성범죄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해 화제였는데요. 그 보고서를 작성한 헤더 바 여성권리 부문 부디렉터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겁니다. 21대 국회 전반기 여성가족위원장이자 24년 간 젠더 폭력 현장에서 여성 피해자를 도왔던 정춘숙 민주당 의원이 허스토리가 진행 중인 '여자를 돕는 여자들(여.돕.여)' 프로젝트에 깊이 공감해,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어요. 가정폭력, 교제살인 등 전통적 형태의 젠더 폭력뿐만 아니라, 'N번방·박사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성범죄도 새로운 형태의 젠더 폭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에 마련된 만남의 기회가 무척 소중했습니다.

- 바 디렉터는 한국에 만연한 불법촬영 등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외국에도 공공장소 불법 촬영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모든 여성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수상한 구멍을 휴지로 막을 정도이지는 않습니다. 또, 촬영물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유되는 정도나 범위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심각합니다."

- 정 의원도 허스토리와 독자분들께 메시지를 보냈어요. "디지털성범죄 등 젠더 폭력은 개별적 일탈이 아닌, 성차별의 극단적 결과입니다. 여.돕.여 프로젝트는 성차별적인 한국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각자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응원합니다."

▶ 좌담 전문 보려면? https://url.kr/lyhdr9

여자를 돕는 여자들 (여.돕.여)

<허스토리>는 정치ㆍ대중 문화ㆍ창업ㆍ커리어ㆍ과학ㆍ지역ㆍ글쓰기 등 각자의 자리에서 여성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여성의 서사를 10회에 걸쳐 담습니다. 이 개척자들의 서사를 통해 여러분과 더 단단하게 연결되기 위함입니다. 많은 분들과 의미를 함께 하기 위해 첫 두 회만 전문을 공개했어요. 여성들이 서로의 '적'이 아닌 '힘'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 판 짜기 프로젝트, 함께 걸어나가요.

▶ '여.돕.여' 크라우드 펀딩 https://www.tumblbug.com/herstory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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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영화 '세 자매'

매번 미안하다고만 하는 첫째, 완벽한 척하지만 가식이 가득한 둘째, 술에 취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셋째. 너무 다른 세 자매는 똑같은 폭력의 피해자다.

'우리를 향한 폭력을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이 보이지 않는 피해는 공기처럼 촘촘하게 삶을 지배하고 있어 어디에 보상을 청구할 길도 없다.' 일상생활에서 온갖 여성혐오와 성차별에 맞닥뜨릴 때면 으레 제 마음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기에 얻는 장점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럽지만, 가장 마지막 장면의 '고집스러운 가부장 캐릭터'를 보면 더더욱 말이죠. 이런 여성 서사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수백만 가지의 감정들. 문소리 배우의 수상소감에 벅차오르는 마음. 윤여정 배우를 보면서 저런 할머니로 늙고 싶다는 경외심 같은 것들은 어쩌면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연대와 배려의 마음을 체득해온 이들만이 십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면서요.
"윤여정 선생님, 아까 멋진 무대 보여준 홀리뱅 언니들, 그런 멋진 언니들이 있어서 우리 딸들의 미래가 조금 더 밝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맨 위 '여성의 언어: Her Words'에서 소개한 문소리 배우의 수상소감은 이렇게 이어지는데요. 이달 23일 끝이 나는 '여자를 돕는 여자들(여.돕.여)'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바가 같은 마음입니다. 후배 여성들의 미래가 조금 더 밝아지기를 바라며, 허스토리도 계속해 이곳에서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나가도록 할게요.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12월 2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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