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기용은 보수변혁 실천 출발점
권위적 지도자 아닌 변혁 주도자 돼야
경제 모순 넘는 ‘번영과 정의’ 추구하길
누구는 ‘카노사의 굴욕’이 될 것이라고 했고, 누구는 ‘백기 투항’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지난 3일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당무를 중단한 채 지방을 돌던 이준석 대표를 울산으로 찾아가 만난 일에 대한 정치적 촌평이다. 하지만 애써 고춧가루를 뿌리려는 심산이 아니라면, 그리 볼 일이 아니다. 이 대표와 울산 만찬을 계기로 이 대표는 물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갈등을 수습하고 6일 ‘원팀 선거대책본부’를 출범시키지 못했다면 결과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든 ‘파리떼’든, “김종인이 대수냐, (그사람)없어도 (대선에서)이긴다”는 방자한 얘기가 나돌았다. 윤 후보 지지율이 오차범위 밖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압도할 때 얘기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시대정신과 각성된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을 체감하지 못하는 시대지체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했다. 이런 넋두리 속에서 윤 후보는 ‘종부세 개편’이나 ‘주 52시간제 비현실적’ 발언 등으로 지지율을 단숨에 10%포인트 가까이 까먹었다.
김종인 말고도 바람직한 경세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많다. 다만 김종인은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래, 우리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실천활동에서 부러지면 부러졌지 단 한 번도 어설프게 타협한 적이 없다. 그래서 적어도 김종인이 등판했다 하면, 어쨌든 부러질 때까진 당대의 경제문제, 즉 재벌이든 양극화든 복지든 ‘함께 잘 사는 경제’를 향한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 하는 신뢰가 형성된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으로서 조국 수사 등을 통해 단숨에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타락에 맞선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대선후보로 부상하자 평생 검사로서 옳고 그름만 따져온 그에게 국가경영의 대계(大計)가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김종인은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최적의 카드였고, 끝내 그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 후보는 현실적 정치력을 발휘한 셈이 됐다.
문제는 김종인을 어디까지 쓰느냐다. 굴욕적이나마 일단 모시는데 성공했으니 간판으로나 쓰겠다는 속셈이라면, 조만간 ‘윤핵관’ 등과 파열음이 빚어질 것이고, 결국 파국을 맞을 것이다. 선거 때까진 써도 삼키고, 되고 나서 팽시키는 수도 있다. 사실 김종인을 내세우며 새누리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삽입하면서 보수개혁을 선언했던 박근혜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그를 내쳤고, 2016년 총선 때 삼고초려로 그를 영입했던 문재인 정권도 총선 승리 후 그를 밀어냈다. 윤 후보도 원한다면 그런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건, 기왕 그를 기용한 만큼, 윤 후보 스스로 권력 엘리트로서 지금까지의 한계를 넘어 ‘함께 잘 사는 경제’를 지향해온 김종인의 경세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변혁 주도자로 기존 DNA를 전환하는 것이다.
김종인이 역대 정권과 애증관계를 반복하는 동안, 그로 인해서건 아니건 경제민주화론, 또는 ‘함께 잘 사는 경제’ 이념은 당대의 어젠다로서 국정에 지속적으로 수용돼 왔다. 복지 확대부터 순환출자 금지, 금산 분리,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같은 재벌·대기업정책, 공정거래책 강화나 골목상권 보호 등에 이르는 정책이 그것들이다.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글로벌경제의 격변 속에서 경제민주화는 이미 낡은 얘기가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양극화부터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함께 잘 사는 경제’를 향한 변혁적 정책은 여전히 절실하다. 국민 다수는, 특히 힘겨운 청년들은 김종인의 손을 잡은 윤 후보가 이런 시대적 요구에 얼마나 성실하게 답할 것인지 예민하게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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