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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 극복하고 강소국된 스위스

입력
2021.12.07 04:30
14면

우리와 비슷한 환경 스위스서 배울 점 많아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성공 비결
은행비밀주의 등은 개선 목소리 높아져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한국과 스위스 국기.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과 스위스 국기. 게티이미지뱅크

<30> 우리가 스위스에 주목해야 할 이유

어느덧 다가오는 2022년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내년에도 신규 일자리 창출, 신산업 육성, 미중 간의 갈등, 양극화 해소, 인구 감소 등 쌓여 있는 난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 상황에서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나라를 꼽자면 스위스가 떠오른다.

스위스는 인구 규모뿐만 아니라 영토 또한 협소한 국가다. 이처럼 작은 국가 중에서 글로벌 산업 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나라도 없다. 스위스와 규모가 비슷한 국가 중 스위스처럼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달성한 국가들은 더러 있다. 하지만 높은 국민소득과 함께 비교적 평등한 소득 분배율을 함께 보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

스위스처럼 혁신성 높은 다국적 기업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국가 역시 드물다. 단순히 서비스 업종뿐만 아니라 식음료, 정밀 기계, 바이오 등 다양한 제조 부분의 세계적인 기업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일부 사람들은 스위스가 유럽의 중심에 놓인 교통의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역시 스위스에 대한 대표적인 잘못된 인식이다. 스위스가 유럽의 중심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오히려 교통의 걸림돌이었다. 특히 글로벌 사회에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대양에 접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스위스는 대양과 직접 접하고 있는 나라도 아니다.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장점으로

그렇다면 스위스가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무엇일까. 역설적이게 들리겠지만, 협소한 국토와 적은 인구 그리고 별다른 자원도 없는 국가 환경이 지금의 스위스를 만들었다.

사실 스위스는 이러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개방적 사회 구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스위스의 개방적 사회 구조는 해외 이민자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확인된다.

스위스는 이민자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주고, 이들의 개성과 특수성을 인정해 주려는 높은 개방성을 갖춘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찌 보면, 스위스인 스스로가 이민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스위스는 거주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 출신일 뿐만 아니라, 스위스 인구의 10% 이상이 해외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 스위스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킨 인물들 대부분은 스위스인이 아니다. 대부분은 스위스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기업인 네슬레의 설립자인 헨리 네슬레는 독일 출신의 이민자이다. 스와치 시계의 설립자 역시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Ha yek)는 레바논 출신이며, 다비도프 역시 러시아계 유대인인 지노 다비도프(Zino Davidoff)가 시초였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의 오늘날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 제시한 인물로 알려진 세자르 리츠(César Ritz) 역시 프랑스 이주자 후손이다. 지금도 스위스는 인구 수 대비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영세 중립국의 지위 역시 스위스가 기업하기 좋은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20세기 들어 세계는 줄곧 양분되어 온 경우가 많았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시기, 그 이후에는 냉전 시대가 전개되면서 특정 진영에 편입될 경우 다른 진영에서 경제 활동을 원활히 활동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특정 진영에 편입된 국가들 같은 경우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국가들도 많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기업인들이 스위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업하기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이었다. 실제 이러한 인식은 주관적 견해를 넘어 실제 경제 현상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1894년에는 스위스의 인근 국가인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환율이 1대 1 수준이었다. 즉, 1리라가 1스위스프랑과 교환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세계대전 이후 1스위스프랑으로 환전하기 위해서는 1,000리라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는 달러와의 비교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된다. 1970년 1달러는 4스위스 프랑과 교환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1달러가 0.92스위스프랑과 교환될 만큼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달러보다 높은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스위스의 국가적 안정감은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자신들의 본사를 스위스로 이전하거나 해외 거점 센터를 스위스에 두도록 결정하기에 충분한 요인이다. 스위스에는 2018년 기준 약 2만9,000개의 다국적 기업이 있다. 이들은 전체 고용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스위스 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 게티이미지뱅크

스위스 프랑. 게티이미지뱅크


높은 교육 수준도 강소국 밑거름

앞서 스위스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열거했다고 해서 스위스가 일부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구조를 가졌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위스의 경제 구조에서 중소기업은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중소기업 중에는 세계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중소기업들이 상당하다.

스위스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대거 포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교육’에 있다. 스위스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교사가 높은 보수를 받으며 존경받는 직업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스위스 국민 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학생들 또한 유능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된다. 이 같은 높은 수준의 교육 환경은 스위스 국민들로 하여금 다국적 기업이 스위스에 위치하였을 때, 해당 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 전문성, 높은 직업 윤리 등을 갖출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와 함께 스위스가 여타 국가에 비해 소득 불균형이 완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또한 이러한 교육 환경으로 새로운 기회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국민들 스스로 갖출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며, 이것이 스위스에서 다양한 창업활동과 중소기업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현재 스위스는 높은 교육 여건에 기반한 우수한 인적 자원과 연구개발력을 바탕으로 화학·제약산업과 정밀기계산업의 발전을 선도한다. 또 비밀유지와 안정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특성에 맞는 금융산업을 만들어 내고, 세계경제포럼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혁신을 창조하여 산업화 시대를 이끌고 있는 주역임을 알 수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UBS 본사. AFP 자료사진

스위스 취리히의 UBS 본사. AFP 자료사진


은행비밀주의 개선 목소리 커져

모든 국가에 명과 암이 있듯, 스위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위스 국가 경쟁력의 중심 축을 이루었던 것 중 하나가 은행비밀주의이다. 스위스의 은행비밀주의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낭트칙령 철회 이후 신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제네바로 이주하여 은행업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프랑스 왕은 사치 등을 이유로 제네바 은행으로부터 큰돈을 대출하면서 자신의 대출 사실을 숨기길 원하였다는 사실로부터 유래되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는 1713년 제네바 지방정부에서 처음으로 법제화되었다. 그 뒤에 1907년 스위스 중앙정부의 민법, 1911년 노동법의 법제화 등을 통해 은행비밀이 누설되어 고객이 피해를 보는 경우 피해 고객의 손해를 배상하는 규정을 두게 되었다. 심지어 1934년 ‘은행에 관한 연방법’으로 은행비밀규정의 위법자를 형벌로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을 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위스 지자체를 넘어 스위스 전체를 대표하는 특수성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비밀주의는 유럽의 대표적인 부호들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보호처가 스위스일 수 있음을 인식시키게 된다. 특히 유대인들은 다양한 박해와 압박을 통해 자산이 몰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스위스의 금융서비스에 높은 호응도를 보였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 부호들이 자신들의 사금고를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동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스위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에 위치한 금융회사들이 나치 독일시대에 희생된 유대인 예금을 불로 취득하고 있다는 사실, 이란 등 여러 테러국가들이 자신들의 자금을 보호하고 유통하는 수단으로 스위스 계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다국적 조세 회피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안 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스위스로 하여금 은행의 비밀주의를 수정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위스 경쟁력의 원천인 높은 개방성 또한 최근에는 수정되는 분위기다. 유럽으로 밀려 들어오는 중동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스위스 내 이슬람 건축물(minarets) 설치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외국인 범죄자의 경우 강제 추방 등 외국인 혐오정책(Xenophobia Populists)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스위스의 움직임은 스위스 성공신화의 핵심인 통합(integration)과 관용(tolerance)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세기 스위스가 보여준 놀라운 성과들은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인구 감소, 양극화, 중소기업 지원 등의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이때, 스위스가 걸어간 길은 좋은 참고도서가 되어 줄 것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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