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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수들 뺨 때리고 기둥에 묶어 폭행… '지옥의 수영장' [일그러진 스포츠]

입력
2021.12.22 04:30
수정
2021.12.22 15:55
8면

<3> 비리 사각지대, 장애인 스포츠
'상상초월' 인천시장애인수영연맹 지도자들
슬리퍼로 찍고 상처 없애려 물에 가두기도
"엄마에 말하면 더 맞는다" 아이들 협박도
"수영장 곳곳서 아이들 폭행" 부모들 울분
머리 맞대고 비리 알려 감독·코치 기소돼

인천시 장애인 수영선수들이 지난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수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불과 반 년 전까지 아이들은 사진 속 창고 밖 수영장이 아닌 창고 안에서 지도자들에게 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인천=홍인기 기자

인천시 장애인 수영선수들이 지난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수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불과 반 년 전까지 아이들은 사진 속 창고 밖 수영장이 아닌 창고 안에서 지도자들에게 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인천=홍인기 기자

권혁수(25·가명)씨의 어머니 유경자(61)씨에게 수영장은 구원이자 기쁨의 공간이었다. 유씨는 어렵게 얻은 막내 아들이 발달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시름이 깊어졌다. 숨 쉬는 것 빼고 모든 걸 지켜보고 가르쳐야 하는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 주변은 온통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수영장만큼은 유씨가 안심하고 아들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들이 물에 뜨는 모습이 유씨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구별 없이' 똑같이 물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유씨는 물장구치는 아들을 보면서 ‘우리 아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렇게 유씨는 혁수가 11세가 됐을 때부터 장애인 수영선수로 키웠다.

장애인 선수의 부모로 산다는 건 비장애인 선수 부모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비용을 요구했다. 장애인 선수가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수영장은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장애인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유씨는 어렵사리 장애인 아이를 가르치는 서미경(46·가명) 코치를 소개받아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지난달 30일 인천시장애인체육회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수영선수 권혁수(25·가명)씨가 코치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훈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시장애인체육회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수영선수 권혁수(25·가명)씨가 코치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훈 기자


'장애 엄마' 감독에 아이 맡긴 부모들

유씨는 혁수를 데리고 장애인 수영대회에 출전하면서 이민영(47·가명)씨를 만났다. 이씨 역시 발달장애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혁수 엄마를 비롯해 다른 어머니들을 만나 서로의 처지에 공감했다. 이씨는 아이를 응원하던 학부모에서 벗어나 인천시 장애인수영연맹에 들어가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도자가 된 이씨는 엄마들에게 장애인 선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자신이 다른 지도자보다 아이들 마음을 더 헤아려 훌륭한 선수로 키울 수 있다는 이씨의 말에 어머니들은 동요했다.

지적장애 이혜은(24·가명)씨의 어머니 권모(59)씨는 딸이 시흥시 장애인체육회 소속이었지만, 이씨가 감독을 맡게 됐다는 말을 듣고 소속팀까지 옮겼다. 지적장애 초등학생 아들을 둔 유경은(52)씨도 "아이가 수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수영장에선 형·누나들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장애인 아이들 20여 명은 2017년부터 인천시장애인체육회 및 인천시장애인수영연맹 소속으로 함께 모여 수영을 하게 됐다. 이민영 감독과 혁수를 가르치던 서미경 코치 등이 부모들의 기대 속에 아이들을 지도했다.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장애인 수영선수들에게 폭행이 가해졌던 1층 수영장의 창고. 창고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어 아이들이 폭행을 당해도 모르는 장소였다. 인천=홍인기 기자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장애인 수영선수들에게 폭행이 가해졌던 1층 수영장의 창고. 창고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어 아이들이 폭행을 당해도 모르는 장소였다. 인천=홍인기 기자


함께 수영하는 게 꿈이었는데... 물을 무서워하게 된 아이들

부모들은 또래와 한곳에서 수영하면 아이들 즐거움이 더 커질 줄 알았지만 정반대였다. 2019년 여름 지적장애인 오진택(12·가명)군은 어머니 권모(46)씨와 인천 선학경기장으로 가던 중 "수영장 안 갈래"라고 외치며 손에 쥐고 있던 오리발을 팽겨쳤다. 수영장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이 돌변하자, 권씨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권씨뿐 아니라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 다른 부모들도 걱정이 쌓여갔다. 멍자국과 긁힌 자국 등을 안고 돌아온 아이들 모습에 부모들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루는 혜은이가 눈동자 안에 피가 고인 상태로 돌아와 비상이 걸렸다. 2주 동안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사 진단에 가족들은 혜은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끌어안고 자야 했다. 혜은 엄마가 상처가 난 경위를 묻자, 이 감독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서 코치가 발바닥을 때리다가 막대기가 부서져 파편이 튄 해프닝"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해프닝은 계속 일어났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확 달라졌다.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 싫어 서럽게 울던 혜정이(16·가명), '오늘 수영은 어땠냐'고 물으면 말이 없어지는 민호(13·가명), '물 많이 먹어 어지러웠다'는 기준이(16·가명)까지, 표현이 서투른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언어로 부모에게 위험신호를 보냈다. 부모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수영장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공간이라고.

인천시 장애인 수영연맹 등 소속 지도자들이 장애인 수영선수들을 때릴 때 사용한 도구. 사진=장애인수영선수 학부모측 제공.

인천시 장애인 수영연맹 등 소속 지도자들이 장애인 수영선수들을 때릴 때 사용한 도구. 사진=장애인수영선수 학부모측 제공.

수영장이 지옥 같은 공간이란 사실은 아이들을 이 감독과 코치들로부터 격리시킨 뒤 확인됐다. 이중원 인천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은 당시 인천시 장애인수영연맹 회장과 감독·코치들의 각종 비리를 적발한 뒤, 지난 5월부터 새 감독과 코치들로 팀을 꾸렸다.

'수영장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새 감독이 아이들의 영법을 바로잡으려고 다가가자, 아이들은 잠수 상태로 도망갔다. 코치가 평소보다 소리를 높여 가르치면, 기계처럼 물에서 튀어 나와 야구방망이를 집어 오기도 했다. 아이들 모습을 이상하게 느낀 감독은 학부모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부모들이 "더 이상 이민영 감독과 코치들은 오지 않을 거야"라고 아이들을 안심시키자, 무겁게 닫혀 있던 아이들의 입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장애인 수영선수들에게 폭행이 가해졌던 1층 수영장의 창고에서 한 학부모가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구를 가리키고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장애인 수영선수들에게 폭행이 가해졌던 1층 수영장의 창고에서 한 학부모가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구를 가리키고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찢어지고 피나고...수영장은 피멍을 빼는 공간일 뿐

"왜 엄마한테 선생님들이 때렸다는 얘기 안 했어?" “누가 그래? 봤어? 봤대?” 자폐성장애인 이솜(11·가명)양의 말에 엄마 김송화(56·가명)씨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딸은 평소 보고 겪은 것을 모두 말했지만, 수년간 당했던 폭행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감독과 코치들이 "맞았다고 엄마한테 얘기하면 더 맞을 줄 알아" "수영장에 더 오래 남겨둘거야" 등의 말로 협박했기 때문이다. 이솜양을 포함해 아이들은 코치들 호령에 '엎드려 뻗쳐' 기합을 받기도 했다.

수영장 레인과 2층 체력훈련장 등 모든 장소가 폭행 현장이었다. 수영장에서 자유놀이할 때 사용되는 야구방망이가 폭행도구로 쓰였고, 폭행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무 막대기에 고무밴드를 묶고 때리기도 했다.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에서 한 학부모가 수영장과 건물 내부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CCTV가 보이지 않는 탈의실, 창고 등에서 아이들에 대한 폭행이 이뤄졌다. 인천=홍인기 기자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에서 한 학부모가 수영장과 건물 내부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CCTV가 보이지 않는 탈의실, 창고 등에서 아이들에 대한 폭행이 이뤄졌다. 인천=홍인기 기자

특히 수영장 내부에 마련된 창고는 아이들에게 공포의 공간이었다. 하태수(33·가명) 코치는 아이들을 창고 기둥에 묶어 뺨을 때리고 구타했다. 기둥에 묶인 아이들은 폭행 충격으로 소변을 보거나 토하기도 했다. 양성태(28·가명) 코치는 아이들 머리를 슬리퍼로 수도 없이 내리찍기도 했다.

상상을 초월한 폭행에도 부모들이 몰랐던 데에는 폭행 수법과 증거인멸 방식이 교묘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코치들은 아이들 몸에 흔적이 나지 않도록 때렸고, 흔적이 나타나면 2시간 가까이 수영장에 몸을 담구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물에 오랫동안 있도록 해 멍자국이 남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아이들이 수영하는 공간이 되레 증거인멸 수단이 된 셈이다. 김현아(47·가명)씨는 "훈련이 끝나고 감독과 코치가 나오면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인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인천 장애인 선수들이 지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진. 아이들은 눈동자에 피가 고이거나 이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사진=인천시 장애인 수영선수 학부모 제공

인천 장애인 선수들이 지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진. 아이들은 눈동자에 피가 고이거나 이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사진=인천시 장애인 수영선수 학부모 제공


3년 넘은 폭행에도 증거 빈약... 머리 맞댄 부모들

장애 선수들과 부모들이 감독과 코치에게 죄를 묻는 과정은 험난했다. 수영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의 영상 보존기간이 한 달밖에 되지 않아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에 직접 수사를 요청하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부모들은 아이들 증언으로 구성된 영상과 수년간 해프닝으로 알았던 폭행 사진들을 모아 지난 5월 인천장애인 권익옹호기관에 보냈다.

다행히 조사관들은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경찰에 수사의뢰를 요청했다. 경찰은 해당 범죄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주요 사건으로 보고 전담팀을 꾸렸다. 결국 범행을 주도한 코치 2명은 구속기소됐고, 이 감독과 코치 1명도 재판에 넘겨졌다.

발달장애 수영 선수들이 장애인옹호기관 및 수사기관에 진술한 폭행 내용을 담은 탄원서. 사진=인천시장애인수영선수 학부모 제공

발달장애 수영 선수들이 장애인옹호기관 및 수사기관에 진술한 폭행 내용을 담은 탄원서. 사진=인천시장애인수영선수 학부모 제공


"훈련 위한 폭행은 거짓" 드러나

지도자들은 성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때렸다고 변명했지만, 아이들은 그들의 말이 거짓이란 걸 성적으로 증명했다. 이 감독을 비롯해 지도자들 폭력에서 해방된 지 1년도 안 돼 큰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혜정이는 지난달 20, 21일 열린 제7회 대한장애인수영연맹회장배 전국장애인수영대회 여자 S14 일반-고등 자유형 100m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달성하며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혜정이를 포함해 다른 선수들도 금 8, 은 11, 동 6개 등 도합 25개을 메달을 획득했다.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들이 또래보다 말이 느릴 뿐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며 "장애인 체육계도 차별받지 않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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