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수십 통 전화·카톡... 아이가 친구에게 집착해요

입력
2021.12.06 04:30
24면
구독

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두 살 터울 남매를 키우는 30대 직장인입니다. 큰딸이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걱정이 됩니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에게 점점 과하다 싶게 매달립니다. 그 친구는 점점 딸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요. 저희 아이가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더니 그 친구가 욕설과 함께 '귀여운 척 하지마'라고 보낸 걸 봤습니다. 그 친구가 소리 지르면서 전화를 끊으면, 받지 않는데도 전화를 10통씩 하는 식입니다. 쓸데없는 카톡도 많이 보내요.

제가 '너를 힘들게 하는 친구 말고 다른 친구를 사귀어 보자'거나 '네가 (전화, 카톡으로) 불편하게 하면 누구라도 힘들거야. 좀 참아 보자'고 타일러도 소용없었습니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놀아달라 조르고, 환심을 사기 위해 무리해서 먹을 것이나 선물을 사주기도 해요.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면 안되냐니까 그러면 아무도 본인과 놀아주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럼 '집에서 엄마랑 동생이랑 놀면 되지'라고 하니 그건 너무 재미없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집에 온 이모가 남동생과 놀고 있는데, 관심을 받고 싶었는지 그 앞에 가서 '나 유치원 때 학폭당했잖아' 하는 겁니다. 제가 왜 그러냐며 혼을 냈어요.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에게 전전긍긍하고 함부로 대해도 참았습니다. 일곱 살 때였는데,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면 무릎을 꿇고 빌더군요. 알고 봤더니 유치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저희 애가 본인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겁니다.

저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시댁에서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이 있어 갈등이 많았어요. 딸을 낳았을 때 '너는 딸이 좋니? 난 여자애 싫어'라고 말씀하셨고 아들인 둘째가 울면 '엄마가 몰래 때리냐'며 쫓아와서 둘째를 안고 가기도 했어요.

분가하고 나서는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큰 아이의 자해가 시작됐습니다. 아이는 네 살 때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해를 한 적이 있습니다. 화가 나거나 야단 맞으면 멍이 들 정도로 벽에 머리를 박았어요. 저는 일을 잠시 쉬고, 자해를 할 때마다 회초리로 때리며 못하게 했습니다. 너를 아프게 하고 싶으면 내가 때려주겠다면서요.

제 친정은 가난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아버지의 도박으로 모두 다 잃고 작은 월세방으로 들어갔어요.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일을 하지 않으셨고 저희를 많이 때렸습니다. 어머니가 대신 식당에 나가서 돈을 버셨어요. 형편이 안 됐지만 제가 우겨서 인문계고에 갔고 취업이 잘 되는 대학 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생이 돼서도 정말 바삐 살았어요.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며 학비를 모으고 집에도 생활비를 갖다 줘야 했어요. 생활비를 못 갖다 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저를 앉혀 놓고 '그렇게 살지 말라'며 화를 내던 게 가슴에 맺혀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저희 부모님처럼 상처를 줄까 봐 무서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잘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와 하루에 수십 번씩 안고 뒹굴며 '너무 사랑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 상대방이 되어 말하기 연습도 해요. 하지만 친구 문제는 제가 학교를 따라다닐 수도 없고 걱정이 큽니다. 대체 왜 무던해지지 못하는 건지, 그러든 말든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친구 관계에 대해서는 '네네네'하고 돌아서 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수지(가명·38·직장인)

수지씨, 아이가 겪은 상황을 자세하게 적어 보내주신 사연을 읽으면서 아이를 깊이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은 아이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안아주며 사랑을 표현해주는 엄마예요. 그런데 아이는 지금 외로워해요. 도대체 아이는 왜 그럴까, 먼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어떨 때 외로울까요. 곁에 의미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외로울 거예요. 그렇다면 의미 있는 사람, 예를 들어 가족이 많으면 무조건 외롭지 않을까요. 아니죠, 가족이 많아도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외로워합니다. 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가 어느 정도 충족돼야 외롭지 않아요. 학생이라면 친구와의 관계에서 또는 선생님하고 가깝게 지내며 만족감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사회성, 즉 타인의 자극(반응)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기술이 떨어지면 인간 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이는 이런 면들을 조금씩 갖고 있고 그래서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사회성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하겠지만 자기가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의 경험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 게 가장 커 보입니다. 수지씨가 시댁에서 살던 시기는 아이가 양육자와 애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시기(만 12개월~만 3세)예요. 이 때의 경험이 내재돼 양육자와의 애착 패턴이 형성되고, 그 이후 인간 관계에서도 이 방식이 그대로 작동됩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시기에 남동생을 편애합니다. 수지씨도 신생아를 키워야 했고 시어머니와 불화를 겪었죠. 아이가 의식적으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뿐이지 그 시기 집안 분위기는 굉장히 불편했을 거예요.

아이의 애착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엄마인 당신의 어린 시절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애착을 논할 때는 보통 삼대를 봅니다. 어릴 때 부모와의 관계가 평탄치 않은 사람 모두가 자기 자식과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대할 확률이 높습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어렵고 불편했다면 자식을 편하게 대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수지씨 아버지는 도박으로 가산을 날리고, 술을 드시고 수지씨를 많이 때렸지요. 당시 아버지도 마음의 고통이 있었을 거예요. 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살려고 애쓰셨어요. 그 고단함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렇지만 어린 수지씨에게 아버지는 보호해주기보다는 공격적이었고 어머니는 베풀기보다는 도움 받기를 바라셨지요. 당신은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책임지고 집안을 짊어졌어요. 부모님은 이런 당신에게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한 것 같지도 않아요. 가족을 모른 척하지 않고 애쓴 수지씨에 대한 고마움과 안쓰러움보다는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않았을 때 느끼는 불안함과 서운함을 표현했던 것 같아요. 사는 게 힘들다 보니 그러셨을 거예요. 당신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정서적 결핍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당신으로서는 아이가 친구 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할 때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너무 사랑하는 딸이니 무척 걱정되긴 하지만 잘 이해되지는 않는 거죠. 추측하건대, 당신 삶에서 직면했던 문제보다는 아이의 문제가 너무 대수롭지 않아 보일 거예요. 제가 보기에 내심 '친구하고 좀 못 어울린다고 뭘 그렇게 전전긍긍하니, 대신 엄마가 놀아줄게' 이런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아이도 은연중에 이런 엄마의 생각을 느끼고요.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고 지도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특히 당신과 아이의 애착 형태를 고려하면, 당신이 아이를 이해하기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당신은 불안정 애착 중에서도 회피형, 딸은 집착형으로 보여요. 회피형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타인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혼자 있는 게 편하죠.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 얽혀서 힘들었던 경험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집착형 불안정 애착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다. 대인관계에 집착하며 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요. 혼자 있을 때는 긴장과 불안으로 분노를 느껴요. 당신은 나중에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친구들에게 갖다 퍼주고, 매달리는 딸이 이해가 안될 거예요. '너 되게 속상했겠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지 않는 거죠. 아이가 자해를 할 때 회초리를 드는 것도 사랑은 하지만 이해는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에요.

당신이 그렇다고 무관심한 엄마도 아니고, 아이를 공격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사랑하죠. 하지만 아이는 엄마로부터 이해받고 공감받는다고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당신과 딸도 애착이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보통 집착형 불안정 애착은 양육자가 이랬다 저랬다,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 또는 강압적인 원칙을 아이에게 강요할 때 생깁니다. 당신의 경우 전자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엄마는 어떨 때는 나에게 애쓰고 잘 해주지만 어떨 때는 혼을 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평소 잘해 주다가도 아이가 자해할 때처럼 어떤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는 이해해 주기보다는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는 사람인 거죠. 당신도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편안하게 대하기 더 어려웠을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수지씨는 우선, 훈육할 때나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딸에게 말하는 방법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무리 네가 울어도 엄마가 절대 들어줄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좋게 말해주는 거죠. 하지만 무서운 얼굴 표정과 큰 목소리로 '안 돼, 엄마가 안 된다고 했지. 도대체 왜 그러는데. 몇 번을 말해야 되니'라고 하는 것은 무섭게 말하는 겁니다. 가뜩이나 타인의 얼굴 표정, 목소리 톤 등에 예민한 아이인데 제한을 두거나 선을 그어줄 때 무섭게 말하면, 아이는 옳고 그른 지침을 주는 게 아니라 사랑을 거절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딸이 친구에게 선물을 사 주는 방식을 먼저 나무라면 딸하고 대화를 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친구를 사귀고 싶은 딸의 마음을 먼저 수긍해 주세요. 엄마의 기준이 아닌, 보편적 기준을 적용해 말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친구가 너무 없으면 학교 생활이 어렵지'라고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나서 문제점을 말해 주세요. '너라는 사람이 친구라는 사람하고 사귀는 거잖아. 그런데 물건을 사 주는 거는 친구라는 사람과 물건과의 교감인 거야. 잘 생각해 봐'라고요. 아이에게 이렇게 꾸준히 말해 주세요.

아이는 존재 자체에 대해 수긍받아 본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아이가 지금 인간 관계를 맺는 방법에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을 거예요. 너무 걱정이 되시겠지만 방법을 바꾸라고 하기 전에 아이의 마음이나 의도를 수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물을 주면서라도 친해지고 싶은 아이의 마음만은 받아주셔야 할 것 같아요. 대인 관계는 평생을 배워갑니다. 엄마가 곁에서 '네게 그런 마음이 있구나'라고 힘껏 안아 주세요. 아이에게는 그 든든한 경험이 큰 용기가 될 겁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oh-counseling) 또는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양식을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정리= 송옥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