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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개막 전날 세상 뜬 조너선 라슨에게 보내는 애도

입력
2021.12.04 10:00
19면

<64> 넷플릭스 '틱, 틱… 붐!'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틱, 틱... 붐!'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를 바꾼 '렌트'의 작가이자 작곡가인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틱, 틱... 붐!'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를 바꾼 '렌트'의 작가이자 작곡가인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언젠가 '이런 작가만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제대로 대답하고자 한다면 꽤 진지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작품 안과 밖의 윤리라든가 자신만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서, 얼떨결에 진심을 하나 말해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마감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팔등에 수액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울며 노트북을 펼치는 작가, 누군가의 장례식에서도 구석에서 대사를 쓰던 작가를 드라마에서 자주 본 탓이었다. 마감에 쫓기거나 마감 때문에 삶을 잃어버리지 않는 작가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그랬던 내가 이 글을 장례식장 한쪽 구석에서 쓰고 있다. 생각만큼 나쁘진 않다. 그러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닌 마음의 상태로, 내가 있는 장소와 어울리게 애도에 대한 이야기, 떠나보낸 뒤에야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뮤지컬 영화 '틱, 틱… 붐!'이 그런 이야기다.

1990년, 서른 살 생일을 앞둔 뮤지컬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조너선 라슨(앤드루 가필드)이고,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 5층에 살면서 한 브런치 레스토랑의 웨이터로 일한다. 무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쓰고 고치고 다시 써온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숍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극 중 중요한 노래의 악상과 가사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고, 오랜 친구와의 우정도 애인과의 관계도 전 같지 않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이룬 것이 없고, 그나마 가진 것조차 잃어버릴 것만 같은 스트레스 속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럴 때마다 조너선은 초침 소리를 듣는다. 우리말로는 '째깍째깍', 영어로는 '틱(tick), 틱' 시간이 흘러간다. 때가 되면 펑, '붐!(boom)' 하고 터져버릴 시한폭탄 같은 인생.


'틱, 틱... 붐!'의 주인공인 젊은 뮤지컬 작곡가 존은 1990년 뉴욕의 한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차세대 미국 뮤지컬의 명작을 쓰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넷플릭스 제공

'틱, 틱... 붐!'의 주인공인 젊은 뮤지컬 작곡가 존은 1990년 뉴욕의 한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차세대 미국 뮤지컬의 명작을 쓰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넷플릭스 제공

'틱, 틱… 붐!'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를 바꾼 작품 중 하나인 '렌트'의 작가이자 작곡가인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1990년대 초반 '렌트'를 쓰던 중에 그에 앞서 공연되었다. 창작하는 과정을 작품으로 쓴 창작자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층적인 레이어가 있고 영화화가 쉽지 않았을 '틱, 틱… 붐!'을 린 마누엘 미란다가 스크린으로 옮겼다. 뮤지컬 '인 더 하이츠'를 쓰고 직접 출연했으며 뮤지컬 '해밀턴'으로 토니상을 받은 브로드웨이 슈퍼스타의 초심을 담은 영화 연출 데뷔작으로 '틱, 틱… 붐!' 이상의 작품은 없었을 것이다. 미란다는 1992년 '틱, 틱… 붐!' 워크숍을 재현한 무대를 하나 만들어두는 것으로 갑자기 노래가 나오는 상황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관객의 진입 턱을 낮춰두는 한편, 이를 1990년 조너선 라슨의 현재를 해설하는 데 사용해 뮤지컬과 영화가 이어지게 하는 탁월한 구성을 보여준다. 뮤지컬로서도, 영화로서도, 뮤지컬 영화로서도 부족함이 없는 성취다.

특히 이 작품 속에는 조너선 라슨과 그의 뮤지컬, 그리고 브로드웨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 있는 보물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조너선 라슨과 린 마누엘 미란다, 그리고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낌없는 도움과 애정이 화면에 가득하다. 뮤지컬 '렌트'의 출연 배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며, 그 유명한 '원 송 글로리'의 오프닝이 연주되는 순간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틱, 틱… 붐!'이 뮤지컬 팬들 만을 위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첫 곡부터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집착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조너선 라슨은 꿈만 꾸다가 그 무엇도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청춘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지,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라슨의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 꿈꾸던 모습으로 맞이하지 못한 서른을 그래도 곁에 남은 사람들과 축하하고, 불안 속에서도 계속하기를 선택하는 데서 멈추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존의 실제 모델인 조너선 라슨은 '렌트'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개막일 전날 밤 사망한다. 넷플릭스 제공

존의 실제 모델인 조너선 라슨은 '렌트'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개막일 전날 밤 사망한다. 넷플릭스 제공

그 뒤로 실제 '틱, 틱… 붐!' 워크숍 영상이 이어지며 조너선 라슨이 '렌트'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개막일 전날 밤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는 자막이 이어진다. 이야기가 끝난 후, 현실에서 이어진 상황을 알게 된 상태로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 '틱, 틱… 붐!'은 애도에 관한 영화가 된다. 끝내 무대에 올리지 못한 '슈퍼비아'를 떠나보내고, 20대를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에도 조너선 라슨은 살고, 사랑했고, 썼지만, 결국 그 역시도 떠났다. '렌트'가 어떻게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흐름을 바꿀지, 얼마나 많은 상을 받게 될지 모르는 채로.

영화 속에서 라슨은 자신의 직업을 두고 뮤지컬 작가란 결국 멸망해버리고 말 종(種)이라고 자조한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그들은 멸종하지 않았다. 21세기 최초의 팬데믹 한복판에서도 뮤지컬은 계속된다. 얼굴을 마주 보는 일에 위험이 담보된 시대에도, 오히려 이런 시대에야말로 공연 예술의 끈질긴 힘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극장을 찾는다.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도, 보고 느끼는 사람들도 멸망하지 않았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조너선 라슨 덕분일 것이다. 도시 빈곤, 퀴어, 에이즈,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며 브로드웨이가 있는 뉴욕의 현재 이야기를 그려낸 '렌트'는 라슨의 위대한 유산이다. 이 작품은 조너선 라슨 덕분에 다른 방식으로 숨 쉴 방법을 찾아내고 진화를 거듭했을 브로드웨이 사람들을 대표해 린 마누엘 미란다가 보내는 깊은 애도와 헌정이기도 하다.


'틱, 틱... 붐!'은 이 작품을 연출한 린 마누엘 미란다가 조너선 라슨에게 보내는 깊은 애도와 헌정이다. 넷플릭스 제공

'틱, 틱... 붐!'은 이 작품을 연출한 린 마누엘 미란다가 조너선 라슨에게 보내는 깊은 애도와 헌정이다. 넷플릭스 제공

'틱, 틱… 붐!'을 보고 나서, 그만두려던 수영을 계속하기로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세 권의 단독 저서와 적지 않은 수의 공저를 냈고 4년 전에 첫 드라마를 썼지만, 여전히 대표작이 없는, 라슨과의 공통점이라고는 수영을 한다는 사실밖에 없는 작가다. 한국 나이로 마흔을 앞두고 마지막 30대를 보낸 올해, 나 역시도 라슨처럼 종종 '째깍째깍'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라슨은 결국 '렌트'를 써냈지만,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잘 아는 이야기는 이미 다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 지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영화 속의 라슨처럼 수영장을 찾았다.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물에 빠져 있는 게 나으니까. 라슨은 꽉 막혀 있는 창작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몸을 혹사하다가 수영장 바닥의 무늬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나는 영감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대단한 것을 기대한다. 책상 앞에서 버틸 때마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는 코어의 힘이 그것이다. 곧 모든 1983년생들과 함께 마흔이 될 테고, 나 역시 바라던 모습으로 맞이하는 새해가 아닐 것 같지만 접영을 할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었으니 하던 일을 계속하기를 선택하려고 한다. 수영이든 쓰는 일이든. 때로 이야기는 내가 고르지 않아도 찾아 온다. 올겨울에는 '틱, 틱… 붐!'이 그런 이야기였다. 계속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애도에 대한 이야기,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


'틱, 틱... 붐!'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틱, 틱... 붐!'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이 영화에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앤드루 가필드는, 2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틱, 틱… 붐!'을 통해 애도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애도는 표현되지 않은, 남아 있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조너선 라슨 역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뮤지컬 '렌트'에서 가장 유명한 바로 그 노래, 내게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캐럴이기도 한 '시즌즈 오브 러브'를 통해서 라슨은 묻는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52만 5,600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그것은 사랑. 지금, 이 순간 내가 한밤의 장례식장에서 기억하는 사랑은 3주 전의 일이다. 내년까지 살아서 네가 쓴 드라마를 보고 싶다고 말하며 내 손을 오래 잡고 있었던 큰아버지에게서 느꼈던 온기, 그것은 사랑. 때로는 애도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끝나지 않은 사랑. 겨울이다. 2021년의 마지막 한 달, 사랑했던 시간으로 지난 일 년을 쟀을 때 모자라지 않도록 마저 사랑하기를.

윤이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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