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폭행 뒤 "넘어져 돌아가셨다" 전 국대 권투선수 징역 10년

뇌병변 아버지 집에 가두고... 라면, 햄버거 제공
어머니 이혼 후 집 나가고 부자 동거 중 불만 누적
재판부 "직계존속 살해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뇌병변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전직 권투선수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이규훈)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21)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그는 올해 1월 인천 미추홀구 자택에서 아버지 B(55)씨 얼굴과 몸을 수십 차례 때리고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A씨는 1월 3일 오후 9시 30분쯤 술에 취한 채 귀가한 뒤 아버지 모습을 보고 격분해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협의 이혼한 어머니가 지난해 9월 집을 떠나자 아버지와 살면서 불만이 누적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자력으로 서 있던 모습이 촬영된 1월 3일 오후 11시 3분에서 구급대원이 자택에 도착한 이튿날 오전 10시 38분 사이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A씨는 1월 4일 오전 "아버지가 숨졌다"며 112에 신고했고 경찰 출동 당시 B씨는 자택 베란다에서 숨져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B씨는 허파, 간, 비장 등이 파열돼 있었고 광대뼈와 갈비뼈 등은 부러져 있었다. 온몸에서 멍과 출혈 흔적도 발견됐다.

A씨는 알코올 의존 증후군과 뇌병변으로 장애가 있는 아버지에게 컵라면과 햄버거 등을 주고 현관문 밖에 잠금장치를 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동거하는 동안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게 하거나 씻긴 사실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중1 때인 2013년부터 고3이던 2018년까지 6년간 복싱 선수로 활동했다. 전국중고대복싱선수권대회 등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6년에는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다.

A씨는 법정에서 "아버지를 학대하거나 폭행해 살해한 사실이 없다"며 "갈등이나 불만이 없어 살해할 동기도 전혀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경찰에서 "아버지가 왜 사망했는지 모르겠다"거나 "넘어진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9명은 모두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심원 전원이 유죄 평결했다. 5명은 징역 7년을, 나머지 4명은 징역 10~16년의 양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직계존속 살해는 용납할 수 없는 반사회적·반인륜적 범죄로, 범행 동기 등에 비춰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다른 친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피해자를 돌보기 위해 동거한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