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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엔진 꺼진 경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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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군 안팎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경항공모함 건조 사업이 사실상 좌초됐다. 한밤중 적 미사일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무참히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경항모 예산으로 72억 원을 제출했으나 국회는 시기상조론과 무용론을 들며 93%를 삭감한 5억 원만 배정했다. 그러면서 해군 제독 면전에서 “우리 해역에 경항모는 무슨”이라는 핀잔과 “영해를 지키는데 구축함과 잠수함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등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한바탕 설교가 이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수입에너지 90%와 수출입물량 40%가 통과하는 남중국해에서 우리 상선이 분쟁에 휩싸이면 “국제법과 외교로 풀면 된다”는 전지전능한 해법까지 제시했다고 한다. 지난달 15, 1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경항모 때리기’에 모처럼 여야가 한목소리를 냈다는 후문이다. 일부 여당 의원이 방어에 나섰지만 ‘모기 소리’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이로써 경항모는 기본설계 착수는커녕, 건조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10월 말까지만 해도 기재부와 국방부에서 경항모 건조 필요에 공감한다는 조사와 용역 결과가 나오는 등 우호적인 시그널이 분명 존재했다. 정부도 매우 ‘낮은 자세’로 국회 문턱을 넘으려고 했다. 2033년까지 국내 기술로 3만 톤급 경항모를 건조할 계획인데, 내년에는 기본설계 착수에만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예산 심의를 불과 보름 남겨두고 경항모에 대한 주변 기류는 싸늘히 식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경항모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의식은 ‘천박하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적합한 단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전략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와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조선업계에 대한 몰상식에 숨이 막힌다. 2조 원을 조금 웃도는 경항모 건조 비용에 대해서 투입예산 대비 군사안보 효과가 크지 않다고 공박한 게 대표적이다. 이 대목에서 고질화된 각군의 기득권 다툼이 오버랩된다. 실제 한정된 국방비를 놓고 해군과 육군의 집안싸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가령 경항모 대신, 탱크와 전투기를 구매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단순 계산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항모를 보유하면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 불필요한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우리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면, 주변국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는 망상이다. 분쟁 발생 시 “외교로 해결하면 된다”는 발언은 더욱 위험하다. 자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상대국의 호의에 맡기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의 장본인에겐 국가의 존재 이유부터 다시 살펴보길 권한다.
군대를 보유하고, 무기를 구입하는 데 세금을 쏟아 붓는 까닭은 전쟁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쟁을 하지 말자는 역설적 행위다. 특히 항모와 같은 전략자산 도입은 “나를 공격하면 상대 또한 팔, 다리 하나쯤은 내놓아야 할 것이다”라는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위협에 상시 노출된 동북아 해역에서 우리의 항모 건조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일본 역시 2만7,000톤급 수송함인 이즈모함을 경항모로 개조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달에는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미 해병대와 전투기 이착함 훈련을 실시하는 등 발 빠르게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 중이다. 이에 중·러 함정 10척이 연합훈련으로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 뒤, 일본 열도를 한 바퀴 돌며 빠져나가는 등 서늘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 방패 뒤에 숨어 남의 손에 안보를 떠넘긴 나라, 경항모의 전략적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되레 목청을 높이는 나라라는 자괴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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