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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채용 처벌법이 없다"... 판사가 국회 콕 집어 말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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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층 중심의 ‘지원자’를 피해자로 하고, '공정한 채용절차' 자체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부정채용죄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서, 업무방해죄로 채용비리를 다스리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회가 ‘채용비리처벌특별법’을 발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22일 서울고법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 항소심 선고 중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 항소심 선고가 있었던 지난달 22일 서울고법 형사6-3부의 재판장인 조은래 부장판사는 '채용비리를 규율하는 입법 미비'를 지적했다. 법을 해석해 재판에 적용하는 판사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 역할을 선고 중에 거론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이례적 발언을 두고 채용비리 사건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게 ‘아귀가 맞지 않다’는 법원 안팎의 공감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 강원랜드·금융권 채용비리 사건 이후 여러 부정채용 사건들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있다. '위계(僞計)'란 상대방을 오인·착각하게 만든 행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상부 지시를 받은 인사팀 직원이 서류심사에서 부적격자를 통과시킨 경우, 이를 모른 채 면접에 들어간 '면접관'을 속여 '면접 업무'를 방해한 게 된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 같은 법리 구조에선 '진짜 피해자'인 선량한 채용 응시자들의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지난달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인사담당자들에게는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면접위원들이 스스로를 업무방해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선처 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언급했다. 진짜 피해자가 아닌 '형식상 피해자'에 불과하지만 면접위원들의 목소리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업무방해죄가 당초 채용비리를 겨냥해 만든 법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다른 법을 적용하기가 마땅찮다 보니 "판례로 업무방해죄 법리를 확장해 처벌해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확장 해석'으로 기업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법관 출신의 원로 법조인은 "사기업의 경영상 판단으로 볼 수 있는 채용 과정에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과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끼워 맞추기식' 적용에 따른 모순과 한계도 분명하다. 채용 과정에서 위계가 없으면, 즉 ‘속은 사람’이 없으면 면접 점수 조작 등이 벌어졌어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대법원은 A회사의 상무가 자신이 고른 지원자 명단을 제시하면서, 함께 면접을 본 다른 부하 직원들에게 면접 점수를 바꾸게 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상무가 대표를 속였다'며 기소했는데, 회사 대표가 "면접위원 사이의 협의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하는 걸 알고 있었다"고 증언해버렸기 때문이다. 회사 구성원들이 '전부 짜고' 채용비리를 공모할 경우, 처벌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유력인사들이 사기업에 채용 청탁을 하는 경우, 지시를 따른 인사담당 직원만 처벌받고 정작 청탁자는 법망을 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청탁자의 관여 증거를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예를 들어 'KT 특혜 채용' 사건 1심에서 KT 임직원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를 받았지만, 청탁자로 지목된 김성태 전 의원은 업무방해죄 적용을 면했다. 김 전 의원은 대신 항소심에서 뇌물수수죄가 유죄로 인정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법적 공백을 없애기 위해 "채용비리를 처벌할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올해 1월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채용비리처벌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청탁자와 구인자(회사)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부정채용자에 대한 채용 취소, 피해자 구제 절차 등의 내용을 담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채용비리의 정의인 '인사의 공정성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위' 등의 문구가 모호하기 때문에 입법을 위해선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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