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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정치 프레임에 빠진 미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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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사회통합의 중대한 시험대를 거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법시스템이 그나마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다른 쪽에서는 고장났다고 한다. 인종차별 화두로 여론이 끓어올라 진영대결이 한창이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지난해 미국 전역을 강타한 것은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에 의해 무릎으로 목이 짓눌려 8분여 만에 질식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 데릭 쇼빈에게 징역 22년 6월이 선고됐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위스콘신 커노샤에서 백인 극우민병대원들과 함께 흑인 인권을 요구하던 시위대 2명을 총으로 쏴 죽인 백인 청년 카일 리튼하우스(당시 17세)에게 최근 무죄가 나오면서 논란이 재점화한 것이다.
리튼하우스의 무죄평결 논란을 이해하려면 앞서 벌어진 커노샤 사건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흑인 남성 제이콥 블레이크는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인 세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로부터 일곱 발의 총격을 당했다. 흥분한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게 과격해졌고, 반대편에선 자경단이 등장했다. 문제의 블레이크라는 흑인 남성은 경찰로부터 총격을 받기 몇 달 전 한 여성을 성폭행해 접근금지명령 상태였다. 이를 위반하고 여성을 찾아갔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격렬한 실랑이를 벌이게 된 것이다. 당시 목격자들은 이 남성이 칼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증언했고, 실제 칼이 현장에서 발견됐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이런 점들을 상세히 다루지 않고 대부분 인종문제로 접근했다.
반대로 미국 보수진영도 직접 선수로 뛰어들면서 판을 키웠다. 백인우월주의를 부추겨 집권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리튼하우스를 “훌륭한 청년”이라며 플로리다 별장에 초청해 그를 ‘보수영웅’으로 만들었다. 전미총기협회(NRA)는 “잘 규율된 민병대”를 거론하며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수정헌법 2조를 칭송했고, 총기보유자협회(GOA)는 리튼하우스를 “총기 소유와 자위권을 위한 전사”로 표현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논쟁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간 것이다.
보수진영은 리튼하우스가 합법적으로 취득한 소총을 갖고 상가들이 시위대에 약탈당하는 모습에 뭔가 도움을 주려 했다고 강조한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동영상들을 보면 분노한 시위대가 리튼하우스를 쫓아가 넘어뜨리는 모습, 한 시위자가 리튼하우스의 총을 움켜쥐려 하는 모습, 또 한 명은 머리쪽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내리치는 모습 등 위협적인 장면들이 찍혀 있다. 리튼하우스에게 폭력을 가한 세 명의 백인 시위자들이 아동학대, 가정폭력, 무기불법소지 전과가 있다는 점에도 보수층은 무게를 두고 있다.
무죄평결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환영만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나비효과’로 자신들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다. ‘인종갈등’ 프레임에 매몰돼 보도하는 미국 언론의 선택적 팩트 취합이나, 성난 백인의 광기로 치닫는 트럼프 계열의 보수진영 모두 평범한 미국인의 판단능력을 마비시키는 존재로 보인다. 리튼하우스라는 청년이 겪은 실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 아니라 배후에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감성적 진영논리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맹목적 진영대결에 망가지는 미국 민주주의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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