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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간 후보들은 무엇을 기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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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는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후 두 차례 교회를 찾아갔다. 10월 10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그리고 11월 21일에는 서초동 사랑의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크리스천도 아닌 그가 왜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을 찾아 기도하고 찬양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안다.
맞다. 퍼포먼스다. 그렇다고 비꼬거나 비난해선 안 된다. 대선 후보가 종교계 표심에 호소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설령 자신의 신앙과 다르더라도, 기꺼이 찾아가 적절한 예를 표하고 경청하는 게 옳다. 더구나 손바닥 왕(王)자 파동을 겪은 윤 후보로선 지지기반인 보수 개신교계가 가장 싫어하는 주술의심을 씻기 위해서라도 교회를 반드시 찾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꼭 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여야 했을까. 두 번 다 초대형 교회여야 했을까. 신자 수가 워낙 많고 교계 영향력도 큰 교회니까 어디든 한 번은 가야 했겠지만, 두 번째 예배는 작은 동네 교회 혹은 시골 교회였으면 어땠을까. 변변한 예배당도 없고 신도도 얼마 안 되는 가난한 교회, 그럼에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던 소박한 교회를 찾아갔다면 좀 더 많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연출 효과 면에서도 그게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윤 후보에 비하면 이재명 후보의 교회행은 훨씬 정교했다. 호남지역 방문 중이던 11월 28일 그는 광주 양림교회를 찾았다. 5·18 당시 쫓기던 시민들을 피신시키고, 모금으로 지원했던 교회다. 5·18의 상징적 장소에서 주일 예배를 본 건 확실히 돋보이는 선택이었다. 전두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던 윤 후보와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도 성공했다.
아쉽게 느껴진 건 예배 후 발언들이었다. 피해자는 평생 고통 속에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가해자는 천수를 누렸다, 이순자씨의 사과가 과연 사과냐, 반인륜범죄는 시효가 없다, 세월이 흘러도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등등. 이 후보는 강경한 어조로 5·18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원칙을 강조했다.
한 줄 한 줄 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경건한 예배를 막 마치고 나온 상태에서, 더구나 옆에 서 있던 목사에게 "말씀에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내놓을 메시지는 아니었다고 본다. 차라리 성경이 말하는 용서와 화해, 그러나 결코 용서할 수 없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소회를 잔잔하게 말하는 편이 어땠을지. 저 발언들은 망월동 묘역이나 옛 전남도청 앞에서, 혹은 5·18을 잊지 못하는 광주시민들 앞에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후보들의 종교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불교계도 만나고, 가톨릭도 찾아갈 것이다. 조계사야 꼭 한 번은 가야 하고 총무원장 스님도 만나야겠지만, 너무 큰 절만 가지 말고 지방 유세가 있을 때 짬을 내 어느 산사, 이름 없는 선승도 만나보길 권한다. 명동성당이야 안 갈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 시골 작은 성당에서 그 동네 노인들과 함께 미사를 보길 권한다. 비록 이 또한 준비된 정치 일정 중 하나겠지만, 이왕이면 그 평온의 시간 동안, 진정으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내 편의 대통령이 아닌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적대와 배제 아닌 포용과 소통의 정치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반도 평화부터 부동산까지 이 엄청난 문제들을 풀어낼 지혜와 능력을 부디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으면 한다.
그리고 종교인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으면 가급적 말을 아끼길 바란다. 꼭 해야 한다면 격정을 토로하기보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내놓는 게 좋겠다. 대형교회 대형사찰, 유명 목사님과 스님들만 만나는 종교계 표밭 다지기는 이제 너무 식상한 레파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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