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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건조한 사막에서 살아남는 선인장의 독특한 광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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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키우던 반려식물 중 한 그루가 기어이 죽고 말았다. 반려식물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관심을 주지 않았던 탓이다. 작은 화분에 자주 물을 주면 오히려 독이 되어 뿌리가 썩는다는 나름의 핑계는 있었다. 이제 나를 제외하면 우리 집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선인장뿐이다. 두 달에 한 번쯤 간신히 물을 주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꿋꿋하게 자라나 처음 받았을 때보다 반 뼘이나 키가 커졌다. 척박한 열대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생존력을 가진 터이다.
선인장처럼 뜨겁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몇몇 식물들은 독특한 광합성 방식으로 살아간다. 식물의 광합성은 빛 에너지를 이용해 여섯 분자의 이산화탄소를 붙여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일반적인 식물들은 빛이 잘 드는 낮 시간에 기공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 광합성을 진행한다. 그러나 건조한 사막의 뜨거운 낮에 기공을 열고 있으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수분이 모조리 빠져나가게 된다. 선인장은 낮 동안 기공을 닫고 있다가 시원한 밤에만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지만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얻어도 광합성을 일으킬 빛이 없다. 선인장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식물 세포의 엽록체 안에 있는 광계에 빛 에너지가 전달되면 높은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주변의 여러 복합체를 거치면서 이동하게 된다. 이때 전자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ATP와 NADPH라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ATP는 포도당 합성을 포함한 모든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본 단위체이며, NADPH는 포도당 합성을 위한 중간 단계의 분자 등 생명체 내의 여러 물질들에게 전자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빛이 없는 밤에는 선인장이 아무리 이산화탄소를 흡수해도 ATP와 NADPH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포도당을 합성할 수 없다.
선인장은 ATP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간단한 형태로 이산화탄소를 변환해 저장해두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밤에 기공을 열어 얻은 이산화탄소를 다른 탄소 화합물에 결합시켜 간단한 유기산을 만든 후에 해가 뜰 때까지 저장해둔다. 다음날 낮에 충분한 빛 에너지에 의해 ATP와 NADPH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전날 밤에 저장해두었던 유기산으로부터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어 기공을 닫은 상태로 포도당을 합성한다. 이 과정이 처음 발견된 식물인 돌나물과(Crassulaceae)의 이름을 따서 이러한 탄소 고정 방식을 CAM(crassulacean acid metabolism)이라 부른다.
광합성의 일부 과정에도 어엿한 이름이 있는데 같이 거주하는 이 꿋꿋한 생명체에게 이름을 붙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오늘 밤에는 잊지 않고 물 반 컵을 주면서 무심한 짝꿍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의 빛깔과 향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선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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