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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섬이 힐링 명소로… 용을 닮아 행운 안겨주는 고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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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 고하도(高下島)는 1904년 '육지면(목화)' 재배가 국내 처음 시작된 곳이다. 섬유 길이가 짧고 거칠어 이불솜, 옷솜 정도로 이용되던 재래종과 달리 섬유가 길고 섬세해 방직용에 적합한 목화다. 문익점이 당나라에서 갖고 온 재래종과 다른 미국 품종으로, 일본인이 가져온 씨앗이었다. 현재 전 세계 생산 면섬유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품종이다. 목포 고하도가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 된 이유다. 그러나 당시로부터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상대하던 이순신 장군이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곳이 고하도다. 일본 수군을 격퇴한 뒤 함대 정비를 했던 곳도 이곳이다. 당시 107일간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됐던 덕분에 유적지와 각종 체험 시설을 활용한 역사 교육장 역할을 하는 고하도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전국구 '힐링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국내 최대 길이(3.23㎞)를 자랑하는 해상케이블카와 잘 꾸며진 산책로가 손짓하고, 에메랄드 빛 바다와 큰 바위 위의 소나무 등 볼거리들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이들을 다시 부른다. 지난해 한국 관광공사가 선정한 '비대면 가을 관광지 100선'에 이름을 올린 섬이다.
가을의 끝자락이던 지난달 28일 오후 섬은 활기가 넘쳤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목포해상케이블카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능선을 따라 해안 산책로 초입으로 발길을 옮겼다. 목포항과 마주보고 있는 고하도에 다리가 놓이면서 교통이 편리해진 데다, 유달산을 기점으로 목포해상케이블카까지 개통한 덕분이다. 여기에 이동약자들도 섬을 만끽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조성된 해상덱(deck·1.8㎞)과 둘레숲길(6㎞)이 매력 만점이다.
걸으면 행운을 준다는 '행운의 용오름길'을 오르기 위해 걷다보면 이색적인 계단을 만난다. 전망대까지 연결되는 '150세 장수계단'이다. 전북 부안에서 친구들과 관광버스를 빌려 왔다는 임성미(56)씨는 "장수계단을 밟고 올라와 뒤를 보니 정말 젊어진 기분"이라며 "봄에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계단에 숫자가 매겨져 어디 쯤 오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장수계단을 지나면 청춘 남녀가 자물쇠로 사랑을 채우는 '러브 박스',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을 하나 만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승리 후 107일 동안 전열을 가다듬었던 역사의 현장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높이 24m, 6층 규모의 전망대다.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려 멀리서도 한눈에 띈다. 오르면 서쪽으로 외달도, 안좌도 등 옹기종기 앉은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전망대 1층에는 카페, 2~5층은 충무공의 활약상과 판옥선 제작, 목포의 역사·관광·문화예술 등 목포 정보가 전시돼 있다. 이들을 섭렵한 뒤 전망대에 오르면 목포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100년 전 구도심과 아파트와 건물들이 들어서는 신도시, 여기에 다도해로 나서는 여객선과 크고 작은 고깃배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용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모양의 고하도에선 용의 등허리에 해당하는 능선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용오름 숲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용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이 숲길 곳곳에 목포시문학 회원들이 출품한 시화 50여 점이 이 놓여 있다. 취업을 앞두고 대전에서 친구들과 찾았다는 박모(27)씨는 "용의 기운을 얻기 위해 왔다"며 "이곳을 지킨 이순신 장군의 숨결까지 느껴지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초행길의 20대 청년들이 고하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시간.
실제로 고하도는 호국의 섬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인 1597년 9월 16일 진도 울돌목에서 13척으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친, 기적과도 같은 승리 배경에 고하도가 있다. 당시 충무공은 이곳에 군수물자를 비축하고 성(진성)을 구축했다. 선착장 인근에 세워진 모충각은 충무공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고하도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목포대교와 해안 절경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해상덱을 만난다.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길이다. 데크 중간중간 이순신 장군 동상과 거북선, 용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또 1940년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설치한 해안 동굴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온 김광환(63)씨는 "해안 절벽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바다를 걷는 기분"이라며 "내년엔 가족과 함께 꼭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에서 방문한 정모(23)씨는 "고하도에서 바라보는 유달산과 어우러진 시가지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면서 "밤에 다시 찾아 야경을 카메라에 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시 관계자는 "푸른 바다 위에 놓인 덱 길, 곳곳에서 용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숲길의 인기가 코로나19로 더 높아지고 있다"며 "용의 기운, 이순신 장군의 기백을 느끼고 갈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산책섬으로 가꿔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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