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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흙에서 분해된다고? 궁금해서 묻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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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24> 생분해 플라스틱
올해 4월부터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의 옥상 화단에는 '수상한' 화분 두개가 놓여 있었다. 길쭉한 두 화분에 묻혀 있는 것은 식물이 아니라, 각종 플라스틱.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생분해 플라스틱의 자연 분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흙에 매립해 놓은 것이었다.
이 장기 실험은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에서 출발했다. ‘매립 시 6개월 이내 자연 분해됩니다’, ‘자연 원료 플라스틱으로 환경에 흔적을 0%로’.
500년 넘게 썩지 않고 바다에 떠다닐 미세플라스틱을 생각하면, 단 6개월이면 자연 분해가 가능하다는 이 신소재는 마치 기후위기의 해결사처럼 보인다.
3개월, 6개월 만에 화분에서 생분해 플라스틱을 캐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리고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실험을 시작한 날은 4월 2일. 5가지 제품을 선정해 묻었다. 딱딱한 플라스틱으로는 ①블루보틀의 폴리락틱애시드(PLA) 재질 컵 뚜껑을 골랐고, 그 대조군으로 석유계 플라스틱인 ②스타벅스의 페트(PET) 컵 뚜껑을 골랐다. PLA는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한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비닐 제형 플라스틱은 ③씨유(CU)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PLA 생분해 비닐, ④산화생분해 비닐인 애드그린 위생백을 골랐으며 역시 석유계 대조군으로 ⑤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재질의 비닐봉투를 택했다.
③번에는 'CU는 환경보호를 위해 친환경 인증을 받은 봉투를 사용합니다'라고 씌어있다. 실제 이 봉투는 환경부의 친환경 인증 마크를 달고 있다. ④번의 포장지에는 '물과 이산화탄소로 자연분해되는 제품입니다'라고 쓰여있다. ①번 블루보틀 컵에는 별다른 문구 없이 PLA라는 분리배출 표시만 보인다. 블루보틀은 친환경 정책 일환으로 전 세계 매장에서 이 같은 컵을 사용한다.
땅에 묻을 경우 혹시 모를 환경오염을 고려해 화분에 묻기로 했다.
전문가 자문을 얻어 미생물이 풍부한 흙만 사용하면 화분에서 실험을 해도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가로 55㎝, 세로 10㎝, 깊이 7.5㎝ 의 나무 소재 화분을 구해 부엽토 등 양질의 흙을 채워 넣었다. 컵 뚜껑인 ①, ②는 각각 지름 9.8㎝가 되도록 반으로 잘라 묻었다. 비닐인 ③, ④, ⑤는 가로∙세로 10㎝의 정사각형으로 잘랐다. 나중에 원래 크기보다 작아진다면 생분해가 된다는 증거일 것이다.
6월 30일. 실험을 시작한 지 세 달이 되어 3개월용 화분을 열어봤다. 처음 묻었을 때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크기 변화도 없고, 플라스틱 뚜껑은 물론 비닐조각도 탄탄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3개월 만에 변화가 있길 기대한 건 다소 섣불렀던 걸까. 생분해 과정에는 온도도 중요한데 아직 6월 말이라 충분히 덥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나. 생분해 플라스틱 인증 시 분해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도 6개월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9월 30일. 6개월용 화분을 확인했다. 여름의 폭염을 지나며 내심 기대했다. 기온이 높을수록 분해가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올해 여름 폭염일수는 15일로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3번째로 길었다. 열대야 일수도 17일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으니 생분해 플라스틱도 혹독한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크기는 실험 시작 당시와 동일했고 조각이 나거나 금이 가지도 않았다. PLA 재질인 ①과 ③의 경우 조금 얇아지고 색깔이 거뭇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분해가 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광고 문구에서 말한 ‘자연 분해’는 전혀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일보 실험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황성연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에게 묻자 “미생물이 잘 자라지 않는 조건에서 실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화분이 작아 미생물이 생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화분만 컸다면 문제없었을까. 자연의 조건에서 '6개월 분해'는 사실상 어렵다.
생분해는 미생물의 작용이다. 토양에 있는 다양한 미생물 중엔 생분해 플라스틱을 먹는 것도 있다. 이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일수록 분해 속도도 빨라진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생분해 플라스틱 인증 기준으로 ‘섭씨 56~60도 상태의 흙에서 6개월간 90% 이상 분해’로 규정한다. 우리 정부도 이 기준을 준용한다.
하지만 ISO 표준은 ‘퇴비화 조건’을 전제해 일반 토양에서는 구현이 어렵다. 시중의 생분해 플라스틱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었던 것도 연구실에서 시험했기에 가능했다. 일반 매립지에 묻더라도 6개월 분해라는 결과는 보기 어렵다. 일반 플라스틱보다 빠를 뿐 수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황성연 센터장은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옥상에서 진행한 생분해 플라스틱 분해 실험을 보여줬다. 석유계 폴리에틸렌(PE) 비닐은 그대로인데 생분해성 비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는 “한국일보가 실험했던 토양과 똑같이 우리가 화단에서 쓰는 일반 부엽토를 사용한 건데, 조금 더 온도와 습도 관리를 잘해주고 분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황 센터장은 “생분해 플라스틱은 분명 쉽게 분해가 되지만 ‘6개월 만에 썩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계절별로도 분해 속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처리할 전문 분해 시설이 없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선택해도 '친환경' 활동이 될 수 없는 여건이다.
2019년 기준 국내 유통규모도 약 4만 톤으로 전체 플라스틱의 0.5%에 불과해 생분해 플라스틱만 따로 분리수거하는 체계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 결국 생분해 플라스틱은 현재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분류돼 소각되고 있다.
또 '생분해'와 '산화 분해'는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황 센터장은 ④번 산화생분해 비닐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생분해가 아니며 '산화 분해'라고 불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중에 팔리는 산화 분해 제품은 석유계 플라스틱에 산화 촉진제를 섞어 빛이나 열에 빨리 쪼개지게 하는 것이다. 미생물의 작용을 통해 자연 분해되는 실제 생분해와는 달리 오히려 미세플라스틱을 대량 발생시켜 유럽연합(EU)에서는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산화 분해 제품에 대해 '지구를 살리는', '토양에 해를 끼치지 않는' 등의 광고 문구를 쓰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차피 분해되지도 않으니 그냥 일반 플라스틱을 쓰는 게 나을까. 그렇진 않다. 옥수수 전분 등으로 만든 생분해 플라스틱은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일반 플라스틱보다 60~80% 감축할 수 있다.
자연 소재인 만큼 소각·매립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도 덜하다. 다만 소각 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발생하는 것은 생분해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황성연 센터장은 “배달 용기나 마스크 같은 생활 편의형 플라스틱 제품들이 사라지긴 어렵다면, 500년이 걸리는 분해 과정을 수년 안으로 줄일 수 있는 대체 소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여건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용도와 환경 영향을 따진 세심한 정책설계가 필요하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활용이 잘되는 플라스틱이라면 굳이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다”며 “제품 특성상 투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영역, 또는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되는 경우에 한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식물성 원료로 대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분해 제품도 대부분 일회용품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친환경'으로 규정하고 규제하지 않으면서 ‘그린워싱(Greenwashingㆍ위장환경주의)’의 소지가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비판한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주로 비닐이나 빨대 등에 쓰이는데, 분해가 잘된다는 명목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방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 정책은 생분해 플라스틱에는 관대하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은 일회용품의 무상제공을 금지하고 있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에는 예외를 허용한다. 더욱이 현재 생분해 플라스틱은 폐기물 부담금도 면제다.
환경부는 뒤늦게 규정을 손보고 있다. 우선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은 환경표지 인증에서 제외하도록 고시를 개정하기로 했다. 농업용 비닐이나 수의용품 등 회수가 불가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회용품부터 다회용기까지 모든 생분해 플라스틱에 ‘친환경’ 표시가 사라질 예정이다.
환경부는 또 생분해 인증 기준을 내년 말까지 강화할 계획이다. 토양ㆍ해수ㆍ수계(하천 등) 등 자연조건에서 분해되는 경우만 생분해로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섞이면 재활용에 이물질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말 자연계에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묘목 시트나 어구에만 쓰는 방향으로 유도할 계획”이라며 “폐기물 부담금도 부과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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