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보다 더 강력’ 신종 변이 출현에 각국 긴장… 하늘길 닫고 금융시장은 출렁

입력
2021.11.26 17:45
수정
2021.11.26 18:3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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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26일 '우려 변이' 포함 여부 논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유전자 변이 32개
남아공 신규 확진자 90% '누 변이' 감염
글로벌 경제 회복 발목 잡을 우려 커져

26일 남아공 소웨토에서 한 보건 관계자가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소웨토=로이터 연합뉴스

26일 남아공 소웨토에서 한 보건 관계자가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소웨토=로이터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변이가 아프리카 남부를 덮치면서 각국이 긴장하고 있다. 면역 체계를 피해 더 많은 확산세를 불러올 '역대 최악의 변종'이 될 것이란 우려에 주요국 방역당국의 움직임이 긴박해지는 분위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대응 마련에 나섰다. 영국과 이스라엘이 아프리카발(發) 하늘길 빗장을 걸어 잠갔지만, 해당 변이는 아시아에서도 발견됐다. 기존 백신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출렁거렸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WHO는 26일 특별 회의를 열고, 남아공과 인근 지역에서 확산 중인 ‘B.1.1.529’ 변이의 이름을 정하고 ‘우려 변이’에 포함할지 논의한다. WHO는 코로나19 변이의 전파력과 증상, 백신 효과 등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려(주요) 또는 관심(기타) 변이로 나눠 관리한다. 지금까지 우려 변이에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4종이, 관심 변이에는 에타 등 5종이 포함됐다. 때문에 외신들은 이번 변이가 그리스 알파벳 순서상 ‘누(ν·nu)’ 변이로 명명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의에서는 신종 변이가 백신이나 치료제를 무력화할 가능성도 살펴본다. 마리아 판 케르크호버 WHO 기술책임자는 “우리는 아직 이 변이에 대해 많은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변이가 많으면 바이러스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종 변이는 지난 11일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첫 보고됐다. 발견된 지 보름도 안 된 상황에서 WHO가 격상 여부를 고민하는 셈이다. 그만큼 전문가들이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달 21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마을에서 한 여성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요하네스버그=AP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마을에서 한 여성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요하네스버그=AP 연합뉴스

이 변이는 바이러스의 표면에 튀어나온 스파이크 단백질에만 32개의 유전자 변이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우세종인 델타 변이가 16개 돌연변이를 보유한 점을 감안하면 2배나 많다. 바이러스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이용해 숙주 세포로 침투하기 때문에 해당 부분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감염력이 훨씬 높아진다. 델타 변이보다 더 빠르게 지구촌에 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라비 굽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델타 변이는 높은 전파력과 중간 정도의 면역 체계 침투력을 보유한 반면, 새 변이는 잠재적으로 전파력이나 침투력 양쪽 모두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기존 백신의 기능과 관련해 영국 보건안전청은 “신종 변이는 백신이 기반을 두는 기존 바이러스와는 극적으로 다른 스파이크 단백질을 갖고 있다”며 “감염으로 획득한 자연 면역과 백신 접종으로 생성된 면역 반응을 모두 회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확산 속도는 매우 심각하다. 보츠와나에서 최초 발견된 후 전날까지만 해도 확인된 총 감염건수가 10여 건에 그쳤지만, 하루 사이 70여 명이 넘는 확진자가 추가로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남아공 최대 도시인 요하네스버그 가우텡주(州)에서만 77명의 사례가 확인됐고, 보츠와나에서 4건이 발견됐다”며 “특히 가우텡주 신규 확진자의 90%가 새 변이로, 이는 해당 국가 대부분 지역에 이미 (변이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남아공에서만 100여 건의 표본이 확인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은 대륙에서 발생한 변이는 홍콩까지 상륙한 상태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홍콩에서 2건의 신규 변이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당초 남아공을 20일간 방문하고 돌아온 30대 남성 한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의무 격리기간 중 머물던 호텔 옆 방에 투숙한 사람 역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2차 감염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홍콩 당국은 공기를 통해 감염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26일 일본 도쿄 시내의 증시 정보 전광판 앞으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도쿄 증시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은 새 코로나19 변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2.53% 급락한 28,751.62에 마감됐다. 도쿄=AP 연합뉴스

26일 일본 도쿄 시내의 증시 정보 전광판 앞으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도쿄 증시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은 새 코로나19 변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2.53% 급락한 28,751.62에 마감됐다. 도쿄=AP 연합뉴스

이에 따라 각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델타 변이로 확진·사망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누 변이’까지 덮칠 경우 의료체계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는 탓이다. 몇몇 국가는 일찌감치 하늘 문을 닫기로 했다. 영국과 일본은 남아공과 인접국인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레소토, 에스와티니 6개국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들 국가에서 귀국하는 자국민도 격리한다.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역시 영국이 입국을 제한한 국가에 모잠비크까지 더해 총 7개국에 대한 입국 제한 방침을 내놨다. 유럽연합(EU)도 남아공발 항공편의 입국 금지를 추진 중이다.

강력한 변이의 등장이 글로벌 경제 회복세를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우려에 세계 증시도 충격을 받았다. 이날 미국 다우 지수선물은 451포인트(1.26%) 하락한 3만5,293.00을 기록했다. 아시아 증시도 주저앉았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전일 대비 747.66포인트, 2.53% 떨어진 2만8,751.62로 폐장하며 지난 6월 21일 이후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0.56%), 홍콩 항셍지수(-2.6%) 대만 자취안지수(-1.61%)도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코스피는 전장 대비 43.83포인트(1.47%) 하락한 2,936.44에, 코스닥은 9.77포인트(0.96%) 내린 1,005.89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면서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3.10원(0.26%) 오른 달러당 1,193.30원에 마감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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