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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입력
2021.11.28 22:00
27면
'지옥'. 넷플릭스 제공

'지옥'.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지옥'은 천사라고 불리는 괴물체가 불쑥 나타나 지옥행을 고지하고 예고한 시간에 지옥의 사자들이 찾아가 태워 죽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신의 계시'라고 해석하는 사이비종교를 다룬 영화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지옥행을 통보받은 사람이라면 가족들까지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죄인이라는 낙인이 필요한 종교단체는 죽음을 홍보에 이용하려 한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출발한다. 절대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하는 행동들은 오류투성이이다. 이런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은 끊임없이 절대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종교를 통해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배우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모든 인간이 종교를 믿는다고 다 행복해질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허점을 사이비 종교는 매우 영리하고 교묘하게 파고들게 된다. 어느 시대나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무리들은 늘 존재해왔다.

만인이 행복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정치는 묘하게 닮아 있다. 당연하게도 국가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서 선의로 시작했다 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대표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저서 '노예로의 길'에서 '자생적 질서를 인공적 질서로 전환시키려는 모든 정치적 기도 즉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결국 노예의 길로 가는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시도에 저항을 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중은 정치인의 혀에 유혹당한다. 국민들은 늘 배신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속아 넘어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에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한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사람에 대한 동일시는 잠시라도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주며 공권력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자에 대한 사적 복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그렇지만 연예인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고단하고 힘든 인생의 빈틈을 채워주다 못해 지속적으로 갈망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정치와 연예는 마약과도 같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종교와 정치와 연예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과도한 동일시와 광신에 빠지게 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뇌의 아드레날린을 더 많이 분비하게 만드는 자극을 탐닉하게 된다. 현재 본인이 사는 세상이 지옥같이 느껴지는 사람은 상상 속에서나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달콤한 허상을 쉽게 거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부추김으로써 현실적인 이득을 보는 집단이 계속 양산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선량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고 속삭이는 천사들이 너무나 많다. 죄의식을 건드려서 공포감을 조장하고,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절대권력에 복종하는 길만이 정의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늘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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