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는 대등한 국력, 이제 사회·경제적 이익 공유해야”... 차기 정부, 대일정책 정치적 결단 필요

입력
2021.11.25 19:17
“한일관계는 외교적 자산… 차기 정부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도출해야”
독일-폴란드 화해 본보기, 전략적 선택 필요

‘2021 코라시아포럼’이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한일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홍인기 기자


“한일관계는 외교적 자산이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바탕으로 재출발해야 한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제 안보 측면에서 한일 관계 중요성을 강조하며 차기 정부에 평화·번영을 위한 전방위 협력을 촉구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양국이 신뢰 회복과 소통 복원을 위한 중대 전환점을 마련해야 하고, 나아가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25일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가 주최한 ‘2021 코라시아포럼’ 마지막 종합토론에서는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진행으로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와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주일 대사를 지낸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이 ‘새로운 한일 관계’ 모색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해법의 방향성을 두고 온도차가 있었지만, 한일이 상호 동반자 관계라는 점에선 의견을 같이했다.

“과거사 문제, 도덕적 우위 토대로 풀어가야”

최대 현안은 강제동원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다. 한국 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에 피해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후 양국 간 감정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다. 이준규 외교협회장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터라 묘안이 있어도 일본이 경청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관계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 객관적 정세 판단에 기초한 대일 정책 수립, 국민 여론 설득을 위한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만 차기 정부가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원덕 교수는 “과거사 갈등은 순수하게 외교적 문제”라며 몇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정부 또는 민간 주도 기금 조성 및 추후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구상권 청구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일본에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 구제를 맡는 방안 등이다. 이 교수는 “한일 관계는 과거와 달리 수직적이지 않을뿐더러 이제는 국력도 대등하다”며 “감정적 대립을 넘어 가치와 이념, 사회·경제적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현익 원장은 한일 관계가 악화된 데는 2019년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등 일본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강조했다. 홍 원장은 “당시 한국 경제가 망가질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관계 정상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민족 정기를 훼손하면서까지 인위적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도덕적 우위를 확립하면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열린 '2021 코라시아 포럼'에서 한일 외교 전문가들이 '한일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이원덕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대중·오부치 정신 계승… 전략적 협력 중요”

21세기 한일 관계는 단순히 양자 간 문제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등 국제 질서 재편과 긴밀하게 얽힌 국제 안보 이슈다.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가 한미 동맹 강화, 한중일 협력, 남북 관계 개선에 지렛대가 될 수 있다며 다각적·입체적 관점에서 양국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한일 관계가 새 정부의 짐이 아닌 외교적 자산이자 활력이 돼야 한다”며 “우리 정부가 먼저 ‘김대중·오부치 정신 계승’을 선언하면서 획기적 대일 정책을 내놓으면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원장도 미중 갈등 틈바구니에서 전략적 협력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특정국을 제재·봉쇄하는 것도 배제해야 한다”면서 “우리 외교 기조는 국제 평화와 상호 번영을 위해선 일본은 물론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태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사를 극복하고 화해를 이뤄낸 독일과 폴란드를 본보기로 들었다. 또 현재 유럽을 이끄는 ‘쌍두마차’ 독일과 프랑스에 대입해 한일 관계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반도 평화, 아시아·태평양 번영을 위해 한일이 공조할 여지는 충분하다”며 “전략적 선택을 통해 21세기 비전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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