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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히키코모리' 자식 돌보는 80대 부모, 남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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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에서는 사회와 담을 쌓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동사의 명사형)'라고 한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 이외에는 사회적 접촉이 없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직업도 가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아 나가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1980년대에 등교를 거부하는 10대를 지칭하는 말로 처음 등장했는데, 1990년대 이후에는 학교나 직장, 사회적 교류를 일절 거부하는 사람을 폭넓게 뜻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일본 정부에서는 사회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히키코모리라고 정의하는데,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120만 명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만,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는 ‘중증’,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는 외출 정도는 감수하는 ‘경증’, 한때는 버젓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외출을 꺼리게 된 사회적 부적응자의 경우까지 패턴이 다양해서, 실제로는 정부의 추정치를 한참 웃도는 히키코모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히키코모리를 거두고 돌보는 것은 대체로 부모의 몫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의식주를 해결해 주면서 스스로 방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당사자의 성격이나 정신병리적 문제, 가족관계의 트러블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본 사회의 전체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가 급속히 증가한 1990년대는 갑작스러운 ‘버블 붕괴’ 이후 취업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된 시기다. 수많은 젊은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기에 좌절을 경험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히키코모리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고도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부를 제법 축적한 부모 세대는 사회 적응에 문제를 겪는 자식을 기꺼이 부양했다. 일각에서는 히키코모리 당사자들보다 자식을 감싸기만 한 부모의 빗나간 애정이 더 문제였다는 시각도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시련을 극복하도록 놓아두었다면 사회생활을 할 만한 자신감을 쌓을 수 있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히키코모리 문제가 개인이나 가족 차원에서 감당해야 하는 단순한 이슈가 아니라는 일본 사회의 인식이다. 1990년대 말부터 히키코모리 본인의 사회적 자립을 돕고, 가족 구성원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NGO단체가 활동해 왔고, 정부도 ‘히키코모리 지원 센터’를 운영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키코모리가 쉽사리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 문제에는 사회적, 제도적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개인의 정신적 성향, 가족관계의 특징 등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히키코모리가 젊은 세대의 문제라는 기존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적지 않은 수의 중장년층이 사회 부적응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일본 정부의 추정치에 따르면, 40~64세 중장년층의 히키코모리 인구는 61만여 명으로 15~39세 청년층(54만여 명)을 넘어선다. 그동안 꾸준히 히키코모리의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그래서 처음으로 40대 이상 인구 집단을 히키코모리에 대한 실태 조사에 포함시켜 본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중장년층 히키코모리 중에는 젊을 때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나이를 먹어버린 경우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이나 인간 관계,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사회적 부적응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중장년층이라면,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장 윤택한 삶을 즐길 수 있는, 말하자면 ‘인생의 전성기’다. 하지만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는 40, 50대 히키코모리는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그저 부모의 지원에 의존할 뿐이다. 문제는 부모 역시 사회적 돌봄이 절실한 고령이라는 점이다. 노년이 되어도 중장년 자녀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뒷바라지를 계속할 만한 경제적, 체력적, 정신적 여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80대 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돌보는 딱한 상황을 빗대어, ‘8050문제’라는 냉소적인 말이 회자된다. 요즘에는 더 나아가 90대 부모가 60대 히키코모리를 보살피는 ‘9060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2019년에는 70대 부친이 자택에서 40대 중반의 장남을 살해한 뒤 자수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부친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정부 중앙 부처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차관급 고위직에 오른,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였다. 아들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중증은 아니었지만,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 상태였다. 학업과 직업에서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뒤 부모의 경제적 원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주 폭력적 성향을 드러냈다. 장남이 쏟아내는 격렬한 분노를 견디기 어려웠던 아버지가 ‘남들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차라리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으로 아들을 해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의 아둔한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히키코모리의 가족들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가 직면한 ‘8050문제’의 처참한 단면을 드러낸 계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히키코모리와 유사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회 부적응자의 문제가 일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동일한 현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회적 접촉을 거부하는 삶의 방식과 이유는 다양하고, 이를 부추기는 사회적 배경도 개별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비슷하다고 해서 동일한 이유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섣불리 진단내릴 만한 사안은 아니다. 사실 언제 어디에나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있다. 인기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들도 자기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 사회적 교류를 거부하고 은둔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역사적으로도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고자 한 위인도 적지 않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처럼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사회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의 히키코모리도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도 경제 활동의 톱니바퀴와 교육 시스템에서 낙오한 부적응자로 인식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를 일부 젊은 층의 문제로 한정짓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 사회의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고령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러다 보니 고령화가 진행 중인 다른 나라는 겪지 않은 사회 문제가 앞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8050 문제’ 역시 사회적 부적응자의 고령화가 앞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고령화가 진행되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10여 년 뒤에는 일본보다도 고령 인구 비율이 높아진다니, 그때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상천외한 사회 문제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서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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