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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보다 엔비디아가 비싼 이유

입력
2021.11.2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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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시가총액 삼성전자 2배
보조장치 회사에서 4차 혁명 중심으로
미래 꿈 보여주고 가보지 않은 길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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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및 최고경영자. 엔비디아 제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및 최고경영자. 엔비디아 제공,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성전자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많은 돈을 번다. 3분기 반도체 부문 매출은 26조4,000억 원, 영업이익은 10조 원도 넘었다. 인텔, TSMC보다 많다. “적어도 망하진 않을 것”이란 믿음에 주식을 사 들인 동학 개미는 500만 명에 가깝다. 국민주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시가총액 1위 회사는 ‘엔비디아’(NVIDIA)다. 삼성전자의 시총이 450조 원 안팎인 데 비해 엔비디아는 950조 원을 넘나들고 있다. 엔비디아의 3분기 매출은 8조5,000억 원, 영업이익은 3조 원 정도다. 실적은 삼성전자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기업이 시총은 어떻게 2배나 될까.

1993년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이 자본금 4만 달러로 세운 엔비디아는 개인용 컴퓨터(PC)의 그래픽카드를 만들던 회사였다. 그래픽카드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연산 결과를 그래픽 신호로 바꿔 모니터 화면에 보여주는 보조 장치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그래픽카드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때 엔비디아가 내놓은 게 실감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다. 엔비디아는 게임 회사가 요청하면 직원까지 직접 보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엔비디아는 나아가 GPU를 그래픽뿐 아니라 일반적인 연산까지 처리할 수 있는 사실상의 CPU로 발전시켰다. 이런 GPU는 단순하지만 반복된 연산을 빠르게 수행하는 데 탁월, 첨단 인공지능(AI)에 적합했다. GPU가 AI에 이어 자율주행 차량에서 주변을 감지하고 판단하는 두뇌 역할까지 하며 엔비디아의 몸값은 치솟았다. 더구나 가상화폐 열풍이 불면서 이더리움 등을 채굴할 때 꼭 필요한 GPU 수요는 더 커졌다. 미래의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도 호재가 됐다. 메타버스의 핵심인 3차원(3D)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GPU가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3D 제작 플랫폼인 ‘옴니버스’도 내놨다. 코로나19로 집이 사무실이 되면서 메타버스는 더 빨라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명도 메타로 바꿨다. 젠슨 황은 “현실에 필요한 기술을 AI가 미리 메타버스에서 스스로 학습하고 시험해 본 뒤 적용하게 될 것”이라며 미래상도 제시했다.

시장은 엔비디아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데 점수를 주고 있다. 게임 그래픽카드나 만들던 회사가 AI와 메타버스 시대의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해결사로 진화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그동안 사업 영역에 큰 변화가 없었고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데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과거 삼성이 일본 기업들을 추월할 수 있었던 건 아날로그 강자였던 소니 등 경쟁사가 디지털 전환을 머뭇거릴 때 과감한 도전과 투자를 단행한 게 결정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삼성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노력도 없진 않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삼성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 재계 순위는 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미국이나 중국은 거의 다 바뀌었다. 신산업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고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우는 데도 소홀했던 결과다. 정치권과 대선 주자들에게도 큰 고민은 안 보인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발표하기 직전 이재용 부회장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자”고 주문했다.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1위를 따라잡고 초격차로 정상을 지킬 수 있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젠 새로운 꿈과 도전이 절실하다. 주가수익비율(PER)보다 주가꿈비율(PDR)을 중시하는 시대다. 시장은 가슴 뛰는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기업에만 환호한다. 그런 기업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뉴스1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뉴스1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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