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5·18 참회하지 않고 사망한 전두환

입력
2021.11.24 04:30
수정
2021.11.24 06:22
27면

쿠데타, 시민 학살 등 역사적 과오 남겨
5·18 진상 규명 계속하고 왜곡 차단해야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979년 11월 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 수사 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979년 11월 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 수사 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혈액암 진단을 받고 야윈 모습으로 8월 광주지법에 나온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전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들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어느 대통령치고 공과(功過)가 없을 리 없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건 고유의 예법에 속한다. 하지만 도리를 말하고 공을 논하기에는 전씨가 역사에 남긴 과오가 너무 엄중하다. 그럼에도 끝내 사과는커녕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떠난 전씨의 거취가 참담할 뿐이다.

그의 죽음으로 5·18민주화 항쟁 희생자 유가족들의 기다림이 무위로 끝난 것은 무엇보다 유감스럽다. 유가족들은 ‘이제는 사죄하려나’ 하며 무려 41년을 기다려왔다. 지난달 숨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나름대로 유족을 통해 반성을 표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국민적 공분을 유산으로 남긴 전씨에게 죽음마저 유죄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다.

전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헌법을 유린하고 권력을 찬탈한 정치군인이다. 이듬해 민주화를 위한 ‘서울의 봄’은 군홧발로 짓밟았고 5·18 민주항쟁은 총칼로 유린했다. 그리고 간접선거로 11, 12대 대통령에 올라 철권통치로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1987년 6월 항쟁 속에 퇴진했지만 그와 신군부가 자행한 5·18 탄압은 용서받을 수 없는 현대사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전씨는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반란수괴, 내란, 내란목적 살인 등의 죄목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되며 법적 단죄를 받긴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 돼 석방된 이후에도 거짓과 왜곡을 멈추지 않았다.

2017년 회고록에선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고(故)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하기까지 했다. 결국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지만 그는 재판 내내 5·18 학살 책임과 발포 명령자에 대해 ‘모른다’고 부인했다.

이런 전씨를 국가장(國家葬)이나 국립묘지 안장으로 예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장례 논란에 앞서 유족들이 먼저 화장 후 휴전선 인근에 안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은 다행스럽다. 정치권도 불필요한 조문과 장례 문제로 논란을 벌이는 일은 피해야 한다.

전씨는 떠났지만 그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일각에서 기회만 있으면 미사여구로 전씨를 칭찬하고 해괴한 논리로 5·18을 왜곡하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보수층 득표를 위해 이런 세력을 이용하려 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5·18 발포 책임자와 암매장 의혹 등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도 그의 사망과 무관하게 계속되어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가리는 데는 시한이 따로 있지 않고 죽음이 면죄부가 될 일도 아니다. 이제 많은 것들이 역사의 몫으로 넘어가겠지만 진실 추적과 왜곡 차단은 아직 이 시대의 책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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