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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터지면 고개 드는 여경 무용론… "뿌리는 비뚤어진 여경 혐오"

입력
2021.11.24 04:4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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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층간소음 사건에 욕설 비하 허위사실까지
"여경·남경 아닌 경찰 문제… 훈련 방식 개선해야"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7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7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인천 남동구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당시 여성 경찰관이 현장을 이탈해 비판을 받는 가운데, 여경의 능력이나 존재 가치를 깎아내리는 '여경 무용론'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남경·여경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번 논란을 진화하려 나섰지만, 온라인상에선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경을 겨냥한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는 양상이다.

경찰 안팎에선 이런 성차별적 공격이 반복되면서 여경들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우려가 높다. 한편에선 이참에 경찰 전반의 현장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인력 양성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붙는 여경 무용론에 허위사실까지 등장

2일 경기 양평군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 여경(동그라미 표시)은 역할 분담에 따라 후방에 자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일 경기 양평군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 여경(동그라미 표시)은 역할 분담에 따라 후방에 자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여경의 현장 대응 능력을 폄훼하는 발언이 판치는 양상이다. 한 커뮤니티에선 욕설과 함께 여경을 비난하거나 "여경은 전화 응대시키려고 뽑는 것 아니냐. 여경은 필요없다"라거나 "매뉴얼이 훌륭해도 여경들은 매뉴얼대로도 못 해서 쓸모가 없다" 등 비하성 발언이 다수 게시됐다.

경찰 출동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활발히 퍼지면서 여경 무용론은 갈수록 빈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2019년 5월 서울 구로구 술집 앞에서 취객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여성 경찰관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이른바 '대림동 여경'이란 이름으로 희화화된 일이 대표적이다. 올해 4월엔 시위 중인 여성 1명을 여경 9명이 제압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또 한 번 여경들이 뭇매를 맞기도 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당시 "같은 기동대더라도 남경과 여경의 근무방식이 완벽하게 같을 수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조작된 영상이 여경 무용론을 부추기기도 한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이 불거진 가운데 최근 경기 양평시에서 범인 검거 현장에 출동한 여성 경찰관이 '엄마'라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는 내용의 영상이 확산됐다. 하지만 여경이 달아났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랐고, 비명소리도 영상 속 여경이 낸 것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여경만 짚어 여성 실패를 부각"

경찰 안팎에선 여경 무용론의 바탕에 여경에 대한 '혐오'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역할이라고 여겨졌던 경찰 조직에서 여성 비중이 점차 늘어나자 여경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이른바 '백래시(반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애 양평경찰서장은 "남성 경찰관이 진압에 실패했을 땐 '남경'이라는 표현을 안 쓰지만, 여성 경찰관에겐 '여경'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비난한다"면서 "여경만을 짚어 여성의 실패를 더욱 부각하는 양상이 있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인천 사건만 해도 1층에 있던 남성 경찰관 또한 제때 사건 현장으로 안 올라오지 않았느냐"면서 "여경 문제가 아닌 경찰관의 문제인데, 여경만 비판한다는 건 여경 혐오 분위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여경 업무 위축 우려… 경찰 교육 개선 목소리도

5월 13일 서울 구로경찰서 소속 한 여성 경찰관이 술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모습. 이 과정에서 대응이 미흡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구로경찰서 제공

5월 13일 서울 구로경찰서 소속 한 여성 경찰관이 술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모습. 이 과정에서 대응이 미흡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구로경찰서 제공

여경 혐오가 확산하면서 여경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위축될 수 있다는 내부 우려도 있다. 서울 시내 지구대 소속 여성 경찰관은 "대림동 사건 때도 여경 사이에서 '지원요청이 필요해도 혼자 일 처리를 못한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지원 요청을 못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여경의 현장대응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조직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관 선발 및 양성 절차를 전반적으로 개선해 역량 향상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현장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며 "교재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훈련하도록 교육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교수도 "여경 무용론이나 폐지론은 단편적 시각에 불과하다"면서 "경찰 조직 차원에서 선발 시스템이 적절한지, 선발 이후 관리 시스템이 어떤지를 점검해 개개인이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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