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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지 쓰라고 문제 낸 수능이 정작 재생지 안 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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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재생 종이, 왜 사용해야 할까요?'
지난 18일 치러진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영역에서는 이런 제목의 지문이 등장했습니다. 폐지를 40% 이상 쓴 재생종이를 잘 활용하면 환경유해물질도 덜 나오고, 숲도 지킬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작 수능 시험지는 재생지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보안상 이유로 시험지 종이재질을 밝히지 않습니다만, 중질지를 사용한다는 게 업계 공통 의견입니다. 중질지는 갱지와 모조지 중간 정도 품질의 인쇄용지입니다. 불투명도가 높고 시각적 피로가 적어 시험지에 알맞습니다.
수능 시험을 치르는 데 이 중질지가 얼마 필요할까요. 수능 시험지는 가로 54.5㎝, 세로 39.4㎝의 4절지입니다. 수험생 1명이 받는 시험지는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사회탐구 9과목, 과학탐구 9과목, 직업탐구 6과목, 제2외국어 8개와 한문까지, 총 81장에 달합니다.
실제 응시자 수는 이보다 좀 줄어들었지만, 이번 수능 지원자는 약 51만 명이었습니다. 대비하려면 최소 4,131만 장 정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엄밀하게 계산하려면 과목별 시험지 장수와 부수 등을 동원해야 하지만, 평가원은 구체적 수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최소한으로만 계산한 겁니다.
이 4,131만 장의 시험지 무게는 어떨까요. 4절 중질지의 무게는 장당 13g이니 약 537톤에 이릅니다. 무게를 계산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종이 1톤 생산에 나무 24그루가 필요하다고 해서입니다. 이를 대입해보면 올해 수능을 위해 베어진 나무는 최소 1만2,888그루에 이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최소치로 추정한 것뿐입니다.
수능 국어영역에 나온 제시문에 따르면 매년 국내에서 사용되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 2억2,000만 그루를 벱니다. 이 중 최소 0.05%가 수능에 쓰이는 겁니다.
나무만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환경오염도 엄청나죠. 일반용지 1톤을 생산하면 2,540㎏의 이산화탄소와 871㎏의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반면 재생용지는 1톤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602㎏으로 일반용지의 37%에 불과합니다. 폐기물도 일반용지 대비 39%인 531㎏ 수준입니다.
에너지 투입량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일반용지는 1톤 생산 시 약 9,671kWh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재생용지는 에너지 6,447kWh만으로도 생산됩니다.
수능 시험지에 재생지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평가원의 답변은 "재생용지를 사용할 경우 답안지 등 용지 자체에 잡티가 있을 수 있어 현재로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생지는 일반용지와 달리 표백을 하지 않아 다소 누리끼리하고, 그 때문에 검정 글자가 도드라져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일반용지보다 강도가 약해 지우개를 쓰면 쉽게 찢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수능에다 재생지를 쓰긴 좀 그렇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제지업계는 이런저런 우려에 대해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한국제지협회 관계자는 "그간 재생용지 품질이 많이 개선됐다"며 "예전처럼 잉크가 번지거나 시험에서 글자를 판독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선입견 때문에 재생용지 품질을 정확하게 확인 안 해본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도 말했습니다.
류정용 강원대 제지공학과 교수도 "재생지의 품질이 걱정된다고 생각한다면 평가원 측이 시험용지 세부규정을 만들어 이를 지키라 요구하면 되고, 지금으로선 그에 맞춰 못 만들 이유도 없다"며 "한 번 쓰고 버리는 시험지인데 매번 좋은 원료의 일반 용지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미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교과서와 EBS교재는, 국산 폐지가 30% 이상 섞인 종이를 씁니다.
다만 일각에서 지적하는 탐구영역과 직업탐구에서의 종이 낭비에 대해서는 교육부의 항변이 더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이들 영역은 각각에서 최대 2개 과목을 선택하기 때문에 손도 대지 않고 버려지는 시험지가 태반입니다. 교육부는 과목별 선택 인원이 들쭉날쭉하다보니 시험 당일에 각각의 시험지를 분류하고 나눠주기가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분류, 배포 과정에서 보안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택한 과목에 맞춰 수험생더러 시험 장소를 이동하라 한다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을 2, 3일로 나눠서 치른다면 모를까, 하루 만에 끝내야 하는 지금으로선 낭비를 막는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며 "만약 반드시 낭비를 막아야 한다면 시험 일수 등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얘길 하면 "신문은?"이라는 반문이 날아듭니다. 신문은 기본적으로 100% 폐지로 만들어집니다. 분리수거만 잘 되면 다 재활용됩니다. 폐지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다보면 종이의 강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재활용 때 약간의 펄프를 추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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