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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인가

입력
2021.11.24 00:00
26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창궐 양상
한국도 시민 아닌 진영목소리만 커
대선 통해 '자유' 진전시킬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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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시대 들어 '비자유주의적(illiberal) 민주주의'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게 되었다. 복수정당이 선거를 통해 경쟁하는 의미의 민주주의는 있으나, 오히려 민주주의가 법치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형국을 말한다.

이 개념을 유통시키는 데 기여한 시사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유고슬라비아 분쟁해결을 위해 특사로 파견된 리처드 홀브루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더라도 당선된 자들이 인종주의자, 파시스트, 분리주의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딜레마이다." 자카리아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는 민주적"이기 때문에 정당성과 힘을 가진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프리덤하우스의 조사를 근거로 1990년대 민주화가 진행된 나라 중 절반이 비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비자유주의가 더욱 확산,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어떤가? 프리덤하우스 보고서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자유가 후퇴한 나라가 증진된 나라보다 많았고 특히 2020년에는 후퇴한 나라와 증진된 나라의 숫자 차이가 45개로서 그 어느 해보다 컸음을 보여준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한 규제의 강화가 중요한 원인이었다 해도, 2014년 이후 자유의 후퇴가 대세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한 추세의 대표적 사례인 헝가리의 경우 집권 '시민동맹'을 이끌고 2010년부터 집권해온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아예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미덕으로 표방할 정도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온 최장집 교수는 대한민국의 정치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본다. 혹자는 발끈할지 모른다. 그 무슨 악담이냐고. 그러나 놀라지 말자. 2020년 한국은 83점을 받아 '자유' 국가에 속하기는 했으나 파나마, 루마니아와 동률에 올랐고, 아르헨티나와 몽골리아에 미치지 못했다. 헝가리와 함께 비자유주의적 통치로 유럽연합(EU)의 골칫거리로 여겨지던 폴란드, 자카리아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예로 든 가나에 비해 그저 1점 더 받았을 뿐이다. 트럼프가 다스린 미국과 동점을 기록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인터넷 자유에서는 참혹하다. 한국은 67점을 받아 '부분적 자유' 국가로 분류됐다. 헝가리에 뒤졌고, 필리핀, 케냐, 콜롬비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국경없는 기자단'이 채택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는 어떤가? 올해 한국은 세계 42위를 기록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의 69위,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의 70위라는 참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2017년 기자단에 약속한 30위에 턱없이 모자란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이 평가에 반영된다면 크게 하락할 수 있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판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증후로서 법치와 대의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대중동원, 그리고 다수결을 무기로 하는 개인의 권리 침해를 지적한다. 다가오는 대선은 비자유주의로부터의 탈출이냐 더욱 심한 비자유주의로의 함몰이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국면이다. 여권은 파시즘으로까지 매도되는 현 정권의 '빠' 정치와 후보가 보이는 포퓰리즘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야권은 어른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를 거두고 낡은 보수로 백슬라이딩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진영의 목소리는 크지만 시민의 목소리는 작은 것도 문제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지나치게 넓은 재량에 의해 16만 개가 넘는 웹사이트가 차단되고 3만4,000개 이상이 폐쇄되었음을 지적한다. 이에 저항하는 촛불은 보이지 않는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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