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때가 아니다"… 유럽 봉쇄 강화에도 英·佛은 '마이웨이'

입력
2021.11.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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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보건장관 "백신 의무화 절대 고려 안해"
프랑스도 "방역지침 강화 없을 것" 선 그어
벨기에에서는 3만5000명 항의 시위 합류

20일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시내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강화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코로나 ID(백신패스) 반대'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자그레브=EPA 연합뉴스

20일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시내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강화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코로나 ID(백신패스) 반대'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자그레브=EPA 연합뉴스

‘성인 백신 접종 의무화’ ‘백신 미접종자 공공장소 출입 금지’ ‘일부 지역 봉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5차 대유행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유럽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내놓는 규제 조치다. 강력한 ‘레드라인’을 설정해서라도 감염병 확산세를 틀어막겠다는, 각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에서 다소 비껴가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는 나라도 있다. 다름아닌 영국과 프랑스다.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면서까지 당장 방역 고삐를 바짝 죄기보다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독려나 실내 마스크 착용 같은 기본적 조치를 통해 또 한번의 감염병 파고(波高)를 넘어보겠다는 복안이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장관은 이날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영국은 확실히 ‘플랜A’에 있다. ‘플랜B’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면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릴 만큼 상황이 위중해지면 방침을 강화하겠지만, 아직까지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국은 현재 △백신 접종 증명서(백신패스) 도입 △마스크 착용 강제 △재택 근무 권고 등 조치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방역에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40대 이상엔 부스터샷을 접종하는 방안(플랜A)을 시행 중이다. 모든 연령대에 부스터샷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일 영국 런던 시내의 한 번화가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20일 영국 런던 시내의 한 번화가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이 정도가 전부다. 지난 7월 가장 먼저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영국은 유럽 국가에서 감염병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전날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 수는 980만 명을 넘어섰다. 영국의 전체 인구가 6,700만 명임을 감안하면, 국민 7명 중 한 명이 코로나19에 걸렸던 셈이다. 그럼에도 다시 방역을 강화하진 않겠다는 방침이다. 자비드 장관은 이날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절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영국의 절대적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다 해도, 바다 건너 다른 나라들보다 확산세가 심각하진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최근 7일간 영국 내 감염자는 전주 대비 9.4% 늘었다. 같은 기간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신규 확진자 수가 30~80%씩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양호’ 수준이다. 긴장도가 높지 않은 만큼 당분간 관망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프랑스도 엄격한 방역으로 ‘유턴’하지 않겠다는 건 마찬가지다. 이날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5차 대유행이 ‘번개 같은 속도’로 시작되고 있다”면서도 부스터샷 접종으로 이를 막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현재 50세 이상부터 신청 가능한 백신 추가 접종 대상을 ‘40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는 특히 “전면적 봉쇄 등 방역 지침 강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백신 미접종자 제한 조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프랑스에선 필요하지 않다”고 답힌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경찰관들이 코로나19 봉쇄 반대 시위 도중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경찰관들이 코로나19 봉쇄 반대 시위 도중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현지의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저강도 대응’은 놀라울 정도다. 프랑스의 최근 7일간 일일 평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만7,153명으로, 전주(9,458명)보다 80%나 늘었다. 그럼에도 일단 현행 조치 유지만으로 자국 내 바이러스 확산세를 잡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현재 프랑스는 식당과 카페, 영화관을 방문하거나 장거리 열차를 이용하려면 백신을 접종했거나 최근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탓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과도 상당히 대조적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상당수 나라들은 코로나19 공포가 다시 현실화하면서 규제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실외 마스크 착용 권고는 물론, 아예 성인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로 만드는 방안까지 내놓는다. 재택 근무제 재도입, 백신 미접종자 이동 제한, 일부 지역 봉쇄 등 발을 묶는 조치도 속속 내밀고 있다.

시민들의 반발도 날로 격화하는 분위기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등에서 격렬한 재봉쇄 반대 시위가 사흘째 이어진 가운데, 이웃 국가 벨기에도 항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날 수도 브뤼셀에서는 3만5,000여 명이 정부의 방역 강화 조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자유를 위해 함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자유, 자유, 자유”라고 외치며 유럽연합(EU) 본부를 향해 행진했다. 시작은 평화로웠지만, 일부 시위대가 차를 부수거나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고 경찰이 최루가스와 물대포 사용으로 맞서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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