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도록 감시당하는 사회

입력
2021.11.22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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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라이더님 지금 어디실까요?"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들고 아파트단지에 들어섰는데, 쿠팡이츠에서 전화가 왔다. 손님 집 근처라고 말하니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 했다. 회사에서 라이더에게 빨리 배달하라고 전화한 거냐고 따졌더니 뜻밖의 답을 들었다. 손님이 라이더가 움직이지 않는다며 쿠팡이츠에 컴플레인을 걸었다는 거다. 주말 피크시간대라 AI 알고리즘이 정신없이 콜을 주고 있는 상태였다. 와중에 기름이 떨어졌는데 마침 손님 집으로 가는 길에 주유소가 있었다. 주유하는 다른 차량도 없어 3분 정도의 시간을 소요해 기름을 넣고 이동했다. 손님은 배달앱을 통해 제공되는 실시간 오토바이 위치를 지켜보고 있다가 움직이지 않자 회사에 전화한 거였다.

이 순간 손님은 소비자에서 노동자의 작업과정을 관리 감독하는 매니저로 변신한다. 관리자로 변신한 손님은 음식이 빨리 오지 않는 책임을 배달기업이 아니라 휴대폰 화면 속 굼뜬 라이더에게 묻게 된다. 배달 서비스 품질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거다. 손님의 전화를 받은 기업은 직접적인 지휘 감독이 아니라 '중개자'로서 라이더에게 빠른 배달을 지시할 수 있다. 실제로 쿠팡이츠는 손님의 의견을 나에게 전달만 한 거라고 해명했다. 덕분에 회사가 노동자에게 빠른 배달을 강요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난과 노동자성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플랫폼기업은 사업을 할 때 발생하는 위험과 비용을 라이더에게 외주화하는 것을 넘어 노무관리를 손님에게 외주화하는 데 성공했다.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 등의 배달플랫폼기업이 배달라이더 위치를 실시간으로 손님에게 보여줌으로써 얻는 이득이다.

디지털 노동 감시는 배달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재택노동자들도 실시간 감시를 당한다. 관리자들은 노동자에게 근무시간 내내 컴퓨터 카메라를 켜서 일하는 모습을 확인받으라고 지시한다. 키보드나 마우스 반응이 없으면 경고음이 뜨고 시간이 기록되기도 한다. 직장인들은 이를 'Afk 뜬다'라고 말하는데, Away From Keyboard의 약자로 온라인상에서 잠수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원격기술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들도 재택노동자에게 실시간으로 시간이 표시된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하거나, 온라인 채팅창을 통해 끊임없이 업무 지시를 한다. 기업은 작업도구나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에 대한 세밀한 디지털감시를 통해 회사와 공장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회사가 CCTV를 이용 목적과 상관없이 노동자의 작업 과정을 감시하거나 관리 감독하는데 사용하면 불법이다. 그러나 '디지털 CCTV'를 통한 노동자 감시 문제는 제대로 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실에 따르면, 검찰의 노동 감시 관련 인권침해 상담은 2019년 7건에서 2020년 46건으로 늘었다. 코로나 시기 우리는 비상상황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별 고민 없이 국가와 기업에 제공했다. 그사이 노동자와 국민은 디지털 노동 감시에 익숙해져 버렸다. 사업장에 CCTV를 다는 걸 넘어서 개별 노동자의 휴대폰과 컴퓨터에 CCTV를 달고 실시간 감시를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다. 위드 코로나에 방역지침 수정이나 일상회복만이 아니라 무너진 노동과 정보인권의 회복도 포함되기를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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