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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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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 붙잡고 한 번 물어보자. 다음 생에 당신은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내 경우 어릴 적엔 삼손 김주성(축구를 사랑했으니까), 혹은 마이클 조던(농구도 사랑했으니까)이었다. 특이한 걸로는 재벌가 7남매 중 여섯째(순번이 안 돌아와 회사 따윈 안 맡아도 되지만 적당히 놀고 먹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강남 빌딩 소유주 아들(조금 더 현실적(?) 목표로 고쳐서) 같은 것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없는 집에 태어나, 그다지 좋을 것 없는 운동신경 덕에, 재주에도 없는 이런 글 쓰느라 마감마다 낑낑대는 신세다. 내게 시대, 부모, 능력을 ‘선택할 자유’ 따윈 없으니 말이다.
애써 열심히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인문학 중 하나인 실존철학은 인간 존재를 두고 ‘우리는 어떤 신의 가호도 받은 적 없는, 그저 이 세상에 내던져 버려진, 투기(投棄)된 존재’라고 가르쳐준다. 영끌 시대, 투기(投機)라도 할 수 있는 존재면 좋으련만.
간단한 얘기다. 밀턴 프리드먼 본인이 제 아무리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낸 입지전적 경제학자라 한들 18세기 미국에서 흑인 여자 노예로 태어나 펜을 손에 쥐었다면, 그때도 ‘선택할 자유를 통해 내 인생 내가 개척할래요’라고 당찬 글을 썼을까. 아니면 멍한 눈으로 ‘저, 알파벳 몰라요’ 했을까. 하필이면 20세기 초중반 미국 땅에서 백인 남성으로 산다는 걸 선택할 자유 따윈, 프리드먼에게도 없었을 것이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대선 무대에서 검사 경력은 약점이다 싶었을 것이다. ‘사람 잡아다 죽이는 수사만 아니라, 사람 부려다 살리는 경제도 잘한다’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선택의 자유 끄집어내고, 김재익을 들어 전두환을 재평가했을 것이다. 그 시절 대한민국의 선택할 자유를 찬양한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얼마나 조롱받았는지에 대해선 몰랐는지,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면접에도 나섰던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의 김준일 대표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다 각 당 후보 비유를 올렸다. 윤석열은 대체 왜 저 사람이 대통령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대세라는 점에서 박근혜와, 이재명은 자기 능력 과시는 잘 하는데 그 능력에서 썩은 내가 폴폴 난다는 점에서 이명박과 닮아 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적절하게 섞어 재미 삼아 올린 글이지만, 꽤 그럴싸하다는 반응이 줄 이었다. 비교 대상이 된 전직 두 분이 나란히 교도소에 계신 탓일까. 두 후보도 서로서로 구속될까 봐 걱정(?)해주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된다.
왜 우리에겐 이런 대통령을 선택할 자유밖에 없는가. 왜 우린 이런 대선판에 투기된 국민이어야 하는가. ‘불량식품이라도 선택할 자유’란 오늘날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한 선견지명이었던가. 곳곳에 탄식이 가득하다.
하지만 명에는 암이 있듯, 암에도 반드시 명은 있다. 혹시 그토록 문제라던 제왕적 대통령제는, 이렇게 제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민주화의 최고봉은 '대통령'이란 위압적 이름을 지닌 거대 수컷 신화의 종언, 곧 ‘대통령 그 자체의 민주화'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이제 87년 체제, 제6공화국 체제를 제발 끝장내자는 글들이 요즘 자주 눈에 띈다. ‘역대 최악 대선’도 역사에 기여할 부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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