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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십네까?" 평양서도 들려올까... 北에 부는 재활용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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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北] 우거진 정글처럼 베일에 싸여 있는 북한 사회 탐험을 시작합니다. 친절한 가이드로 여러분의 5분을 '순삭'해보겠습니다.
“혹시, 당근이십네까?”
북한에서도 중고물품 거래를 뜻하는 이런 ‘당근인사’가 활발해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북한 전자상거래 사이트 ‘만물상’이 최근 한국의 당근마켓처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말 그대로 인기 폭등 중입니다. 하루 평균 조회 수만 15만 회가 넘고, 매주 1,700건의 글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의류부터 기계장비까지 거래 물품도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당국 역시 주민들의 중고품 나눠 쓰기를 열심히 독려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친환경 소비 운동에 동참하려는 걸까요?
북한 조선중앙TV는 3일 ‘재자원화(재활용)와 우리 생활’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스튜디오에 등장한 진행자는 다 쓴 치약 용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하나는 보잘 것 없지만, 이것들을 다 모아 재생하면 결코 작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용도 폐기된 물건에서도 ‘쓸모’를 찾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로 나라 경제가 바닥을 치자 활발히 전개된 우리의 ‘아나바다 운동’을 연상케 합니다.
TV는 이어 치약 용기를 재활용해 새 치약 튜브와 재생수지관을 만드는 평양치과위생용품 공장을 보여줍니다.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을 때 나오는 폐수로부터 단백질을 추출해 사료나 비료로 만드는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소개합니다. 어느 생산현장에서든 ‘티끌 하나도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가 넘쳐납니다. 한 공장 지배인은 활짝 웃으며 “오물이 다 보물 같다”는 말까지 내뱉습니다.
물론 북한에 부는 재활용 열풍은 주민들의 자발적 의지가 아닙니다. 민간 주도로 종이컵 대신 텀블러, 비닐봉투 대신 에코백 사용이 일상이 된 남측과는 다릅니다. 노동당 허락 없이 아무거나 버렸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지난달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함경북도 청진시의 한 사업소 일꾼들이 당의 재활용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도 검찰소에 연행된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전문가 검수를 거쳐 재활용 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이들이 쓸 만한 것까지 죄다 폐기한 탓입니다.
이미 지난해 4월 북한 지도부는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자원화법’을 채택해 주민들을 다그칠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법안에 따라 모든 기관과 단체들은 생활쓰레기를 어떻게 재사용할지, 종류별 계획을 짜 상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가는 노동교화소로 끌려가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살벌한’ 지침은 재자원화가 최고지도자의 관심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며 경공업 부문의 “원료ㆍ자원 국산화와 재자원화”를 정책 과제로 못 박았습니다. 그는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원료 국산화와 재자원화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물자 재활용에 골몰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북한에 물자를 들여올 통로가 아예 막혀 있는 탓입니다.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오랜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경 봉쇄입니다. 특히 북한은 2년 가까이 국경 문을 닫아 물자가 동났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수입한 조폐 용지와 잉크 물량을 전부 소비해 북한산 종이에 임시화폐인 ‘돈표’를 찍어내고 있다”고 공개했을 정도입니다.
교역이 전무하다 보니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고육책인 셈이지요. 북한의 재자원화 정책은 5개년 경제 계획의 ‘첫해’인 올해 말 결산을 앞두고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뼈를 깎고, 살을 저미면서라도 끝장을 봐야 한다”는 전투적 구호만 봐도 그렇습니다. 생산력 향상에 필요한 필수 자원이 없는 만큼 기댈 비책은 재활용과 아껴쓰기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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