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몸에 좋다’고 말하려면 측정 가능해야 한다

입력
2021.11.21 17:40
수정
2021.11.21 18:2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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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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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 탓인지 진료 중에 어떻게 해야 면역을 높일 수 있는지를 묻는 환자들이 많다. 면역시스템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한다거나, 백신 주사를 맞으면 항원ㆍ항체 반응 등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만들어진다는 등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것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 면역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까지 생기니 면역을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다.

‘○○에 좋다’는 말의 쓰임새는 점점 진화(?)하는 듯하다. 과거에는 ‘몸에 좋다’ ‘여자에게 좋다’ ‘남자에게 좋다’는 포괄적인 수준이었다면 요즘은 ‘면역에 좋다’ ‘위나 장에 좋다’ ‘관절에 좋다’ ‘눈에 좋다’는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사실 ‘몸에 좋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따지기는 쉽지 않다. 밥, 콩나물, 된장국이 몸에 좋으므로 다른 식품들도 몸에 좋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역에 좋다’는 말은 다르다. 첫째 어떤 식품이 면역에 좋다고 주장하려면 그 식품을 먹은 뒤 실제로 면역이 좋아졌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높았던 혈압을 정상으로 낮춘다는 것을 입증해야 ‘혈압에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혈압은 측정값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고, 정상 수치(120/80㎜Hg)도 정해져 있어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면 면역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과학적이고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면역 측정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면역을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부 있다. 인터넷에서 ‘면역 측정’을 검색해보면 면역을 측정해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 중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과학적 신뢰도가 높은 면역 측정법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인체 면역에 수많은 항체, 단백질, 물질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역은 흔히 ‘면역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면역시스템의 수많은 구성 요소 중 한두 개만 측정해 면역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면역을 측정할 수 있게 되더라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하나 더 있다. 어떤 학자가 열심히 연구해 면역시스템을 대표할 만한 지표(marker)를 찾아냈고, 이를 측정해 면역 변화를 알 수 있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면역은 높아지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높아진 면역이 오히려 과도한 면역 반응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을까. 이 때문에 높은 면역이 건강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판단 기준은 면역을 높인다는 식품을 섭취한 사람과 섭취하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 사망률을 줄이는 효과(또는 오래 살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다. 오래 살게 해주는 효과도 없는데 애써 면역 수치를 높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사람 혈압을 측정해 혈압이 높고 낮음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진료와 건강관리에 활용하기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언젠가 면역을 측정해 진료와 건강관리에 활용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면역에 대해 최대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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