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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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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저소득층 주택가에 위치한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도시재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꿀잠이 위기에 처했다. 신길2구역 재개발추진조합이 지난달 공시한 정비계획에 건물을 존치해 달라는 꿀잠의 입장이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100여 개 시민단체가 연대해 꾸린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은 지난 16일부터 영등포구청 앞에서 꿀잠 존치를 요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꿀잠은 2015년 풍찬노숙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들의 쉴 곳을 마련해주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시민 2,000여 명의 모금(8억 원)과 50여 명의 건축전문가들의 재능기부로 지상 4층 다세대주택 건물을 개조해 2017년 8월 문을 열었다. 영등포역이 지척에 있어 서울로 올라와 시위를 하는 많은 비정규ㆍ해고 노동자들이 이곳을 쉼터로 삼아왔다. 노동문제 상담, 교육,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18일에도 경북 경주의 첨단소재공장 정리해고자 16명이 이곳에서 묵고 내려갔고, 흑자폐업한 대구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실직 노동자 2명도 이곳을 이용하고 내려갔다.
□ 지난 4년간 매해 4,000~5,000명이 이용할 정도로 ‘전국 해고노동자의 쉼터’로 자리 잡았기에 이 지역의 빠른 재개발 진행은 꿀잠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재개발과정에서 대토(代土)로 보상을 받더라도 새로 건물을 신축할 비용 감당이 쉽지 않고, 상경시위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특성상 타지역 이전도 여의치 않다. “재개발조합이 대화 의지가 없다. 현재 건물 존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말한다.
□ 꿀잠의 철거 위기는 노동 문제가 주변화되고, 도시재개발로 사회적 약자들의 공간이 밀려나는 사태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비정규직 확대를 꾀했던 전임 정부의 노동적대 정책이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들었다. 이른바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정부가 들어섰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사이 비정규직은 150만 명이 증가했고 불완전 고용의 상징인 플랫폼 노동자는 지난 1년 사이 3배가 늘었다. 꿀잠은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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