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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오심 논란'에 맨눈으로 판정한 수영연맹 "판독에 방송용 화면 못 써"

입력
2021.11.19 09:00
수정
2021.11.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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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영연맹, 소년체전 '부정출발' 판정 논란에
"사무처·심판위원회도 인지" 사실상 오심 인정
이의신청 당시 판독할 영상 있어도 안 봐
연맹 "규정 상 판독에 방송용 화면 사용 불가"
전문가 "연맹 판단·운영 미비...책임져야"

12일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 수영 남자 유년부 평영 50m 결승 경기에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보다 먼저 출발하고 있다. 보배드림 캡처

12일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 수영 남자 유년부 평영 50m 결승 경기에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보다 먼저 출발하고 있다. 보배드림 캡처

전국의 수영 꿈나무가 기량을 겨루는 소년체전서 벌어진 '부정출발 판정 논란'을 주최 측인 대한수영연맹이 사실상 오심으로 인정했다. 또 부정출발을 확인할 수 있는 방송용 영상화면이 있는데도 현장 심판진은 규정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없다며 맨눈으로만 보고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대회에서 정착된 비디오 판독을 국내 대회도 도입할 수 있지만, 연맹 측은 "장비도 예산도 없어 어렵다"는 입장이라 세계 수영계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관련기사: 수영 '0.39초 만에 출발' 유년부는 1등·초등부는 실격? 소년체전 판정 논란)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18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12일 대전국제용운수영장에서 열린 제50회 전국소년체육대회 겸 MBC배 전국수영대회 남자유년부 평영 50m 결승 경기의 부정출발 논란과 관련해, "(선수의) 학부모가 속상할 상황이 발생한 것을 심판도 알아 경각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다음 대회부터는 이견 없이,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대회 운영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을 저희 사무처와 심판위원회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오심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이의신청 기각한 심판진...연맹 "방송용 화면은 판독에 사용 불가"

대한수영연맹 홈페이지 캡처

대한수영연맹 홈페이지 캡처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2일 열린 해당 경기 장면과 함께 "1등한 선수가 부정 출발했는데 '동물적 감각의 반응속도'라고 심판장이 판단, 1차, 2차 항소 이의신청이 모두 기각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대한수영연맹이 직접 유튜브로 생중계한 이 영상을 보면, 우승한 3레인 선수가 다른 선수들 보다 먼저 출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해설자인 황성태 국가대표 이하 우수선수 경영 전임감독이 출발 직후 "3레인 선수 스타트 서두른 부분도 있었는데요, 마지막에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해당 영상을 본 전문가도 한국일보에 "이미 몸이 빠져나가고 출발 총소리(버저 소리)가 난다"며 실격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의제기에도 심판진은 모여 논의한 끝에 아무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실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영상이 있음에도 이의신청이 접수됐을 때 심판진이 비디오를 판독에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영연맹에 따르면 국내 대회에 준용하는 국제수영연맹(FINA) 규정에 '비디오 판독용 영상 장비를 별도로 설치한 경우 실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촬영된 화면을 검토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연맹 관계자는 그러나 "해당 영상은 판독용이 아닌 '중계용' 영상이라 검토하지 않았다"며 "중계용 영상을 판독할 때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촬영 각도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 민원 제기 가능...번복 어려울 듯"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연맹 측은 FINA 규정대로 처리해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맨눈으로는 쉽게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방송용 화면을 보지 않고 내린 논란의 심판 판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직까지 '규정에 따라 처리돼 판정 번복은 어렵다'는 게 연맹과 수영계의 중론이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어린 선수들은 실수가 많아 규정에 조금 어긋나도 지나치지 않으면 실격시키지 않고 용인하는 심판과 지도자들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순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영상만 봤어도 논란을 해소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연맹의 판단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많은 국제대회에 도입된 비디오 판독...국내 수영대회는 전무"

올림픽 등 국제 수영대회에서는 비디오 판독이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다. 국제수영연맹(FINA) 홈페이지 캡처

올림픽 등 국제 수영대회에서는 비디오 판독이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다. 국제수영연맹(FINA) 홈페이지 캡처

이 전문가는 또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오심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가) 민원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판정이 번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주요 대회 수상은 상급학교 진학이나 선수 경력에 항상 따라다닐 텐데 오심으로 피해를 본 학생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한 지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소송이라도 해 바로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운영 방식이라면 오심 논란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 수영대회서는 일찌감치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실시하지 않고 있어서다.

수영연맹 관계자는 "초중고 성인 등 연령에 관계없이 전국 단위 대회 중 비디오 판독을 적용한 대회는 없다"며 "FINA 규정에도 비디오 판독이 의무라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 세계 수영계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종목들이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는 추세와도 비교된다.




수영연맹 "장비 없고, 예산도 없어" 황당 해명

프로농구 경기 도중 심판이 경기 화면을 보면서 비디오 판독을 하고 있다. 수영은 국제 대회서 비디오 판독이 오래전부터 도입됐지만, 국내 대회서는 아직 실시되지 않고 있다. KBL 제공

프로농구 경기 도중 심판이 경기 화면을 보면서 비디오 판독을 하고 있다. 수영은 국제 대회서 비디오 판독이 오래전부터 도입됐지만, 국내 대회서는 아직 실시되지 않고 있다. KBL 제공

또, 수영연맹에는 아예 비디오 판독용 영상 장비조차 없어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영연맹 관계자는 "예산 문제로 비디오 판독 촬영 장비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재정적 뒷받침이 되면 도입하고 싶지만, 현재 연맹 여건상 예산이 없다"고 말했다. 또, "4년마다 개정되는 FINA 규정이 내년에 바뀌는데, 현재 강제 사항이 아닌 비디오 판독이 만약 의무화되면 당장 장비를 마련할 때까지는 국내 대회를 치를 수 없게 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예산 핑계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얘기"라며 "앞으로도 개선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한 현장 지도자도 "수영이 0.01초를 다투는 기록경기인 만큼 오심을 줄이고, 세계 수영계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디오 판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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