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두 번의 실패 세 번째 등판

입력
2021.11.18 18:00
수정
2021.11.18 18: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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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둘 만들고 사과한 킹메이커
당선 성공보다 성공한 대통령이어야
윤석열과 가치 공유하는 동행인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사무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힘 총괄 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선대위 인선에 이견을 드러내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뉴스1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사무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힘 총괄 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선대위 인선에 이견을 드러내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뉴스1

‘안철수 리스크’를 자초했다는 비판에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분명 국민의힘 승률을 높일 인물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공청회를 열고선 징계 않고 뭉개던 정당에서, 무릎을 꿇고 “5월 정신 훼손”을 사과한 것이 그였다. 세월호 막말 의원을 제명 못 해 우왕좌왕하던 당에서, 그의 옹호자 영입을 취소한 것 역시 김 전 위원장이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행보가 뭐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그 지당한 일을 김종인 이전 국민의힘에선 왜 아무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싶다. 상식적 판단과 합리적 정책 콘텐츠라는 그의 덕목으로 국민의힘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런데 김종인의 선택은 왜 윤석열 후보인 것일까.

반문의 상징이란 점 외에 어떠한 신념(즉 김종인의 신념)도 새길 수 있는 미완의 신인, 빈 서판(Tabula rasa)으로서 윤 후보를 낙점한 게 아닌가 싶다. 김 전 위원장은 몇몇 인터뷰에서 “윤석열이 돼야만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다” “정치를 처음 해보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사람에 집착하면 성공 못 한다”며 선대위를 전면 재편해 “파리떼”를 청소하도록 압박했다. 앞서 두 대통령을 도울 때도 ‘주변 평가’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까운 가족이 없는 등 “주변이 간단”하고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여 괜찮게 봤고 처음 문재인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에워싸고 있는 그룹”으로 “주변이 복잡”해서였다(김종인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 그러니까 김 전 위원장은 세력이 두텁지 않은 사람을 밀고 싶어한다. 자기 말이 먹히지 않을 만큼 소신이 확고하면 또 거들떠보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윤 후보) 주변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으면 뭐 하러 가냐”는 말은 더 선명하다. 그렇게 해서 추구하려는 목표는 줄곧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을 성공한 킹메이커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스스로 실패를 인정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데 대해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고 회고록에 썼다. 박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지우고 창조경제를 내세우자 “사람을 잘못 봤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나는 그에게 이번엔 정말 배신으로 끝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선대위만 정비되면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건지 알고 싶다. 120시간 노동과 부정식품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장지상주의자 윤 후보가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발사주 의혹에 연루된 그가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개혁에 신념이 있을까. ‘건강한 페미니즘’과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주장하면서 양성평등사회를 구현하는 건 가능한가. 지금 언급한 것들은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전면개정한 국민의힘 정강정책인데, 윤 후보와 가치를 공유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토로했던 배신감도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애초에 신념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밀었으니 실패를 잉태한 성공이다.

김 전 위원장의 가치와 정책은 2021년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그의 세 번째 등판은 한심한 정치판의 현실을 드러낸다. 정당들이 진화하지 못하고 그에게 손을 내미는 게 애처롭다. 선대위가 뜻대로 정리되면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이 등판할 것이다. 나는 그가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하기보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바란다. 윤 후보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는다면 나서지 말아야 하고, 윤 후보의 능력과 가치를 확신한다면 윤석열의 콘텐츠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또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김종인의 배신이 될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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