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최근 자율주행차량의 개발이 한창이다. 자율주행차량에선 사람의 눈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자동차업계에선 다수의 카메라로 영상을 획득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라이다 센서'를 이용하는 방식이 개발 중이다. 라이다(LiDAR)는 'Light Detection and Ranging(빛감지와 거리측정)'의 약자로서 적외선 등을 이용해 물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법을 말한다.
라이다의 거리 측정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빛을 쏜 후 대상에 맞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빛의 속력에 측정 시간을 곱하면 왕복 거리가 나온다. 이를 반복 측정함으로써 주변 사물들을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라이다의 원리는 레이더와 동일하다. 단, 라이다가 사용하는 전자기파의 파장이 레이더의 라디오파보다 짧은 적외선이나 가시광선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파장이 짧으면 더 세밀한 탐색이 가능하다. 더 촘촘한 눈금을 가진 자로 길이를 더 정확히 잴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라이다는 현재 차량뿐 아니라 농업, 기상학, 군사 기술,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스마트폰에도 라이다가 포함되어 거리를 포함한 정밀 측정에 활용된다. 우주로 눈을 돌리면, 궤도위성에 장착된 라이다는 달이나 화성의 지형 탐색에 큰 공헌을 했고, 올 초 탐사로봇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에 착륙할 때도 라이다를 이용한 지형 조사가 안전한 착륙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라이다를 이용한 원격 탐사가 혁명을 일으키는 분야가 있다. 바로 고고학이다. 특히 중미의 정글처럼 빽빽한 수풀로 뒤덮인 곳에 숨어 있는 유적의 발굴에서 라이다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왔다.
고고학 탐사에 동원되는 라이다는 보통 비행기에 실려 활용된다. 비행기에서 지면 쪽으로 레이저 펄스를 보낸 후 지상에 맞고 돌아오는 신호를 감지해 거리(높이)를 측정한다. 문제는 밀림의 경우 대부분의 레이저 펄스가 나무나 잎 등 지면 위 식물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잎과 잎 사이 비좁은 공간 속으로 펄스가 지나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일 초에 수십만 번의 레이저 펄스를 발사한다. 이렇게 획득한 막대한 데이터에서 적절한 시각화 모델을 통해 식물의 정보를 제거하면 밀림 속에 숨어 있는 지면과 유적의 정보가 드러난다.
2018년 발표된 한 고고학 연구는 라이다의 위력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고고학자들은 라이다를 이용해 과테말라 정글 속에 숨어 있던 마야 유적지를 탐색한 결과 피라미드를 포함한 다양한 건축물과 집 등이 무려 6만여 채나 발견됐다. 이는 마야 문명이 고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음을 보여줬다. 지난달 한 저널에 실린 연구 논문도 흥미롭다. 남 걸프 연안의 방대한 지역을 라이다로 스캔한 결과 아메리카 초기 문명인 올멕(Olmec) 문명이 형성한 정착지와 정치 조직의 흔적을 2000년간 추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20여 개의 둔덕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직사각형 광장의 형식이 중미의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음도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런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면서 어떤 고고학자는 중미의 정글에 라이다만 갖다 대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그때마다 교과서가 다시 쓰인다는 얘기까지 한다.
과학자들의 실험 기법은 대개 대상에 자극을 주고 그 반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이다는 빛 펄스를 대상물에 쏜 후 돌아오는 빛의 반향을 기록한다. 빛 대신 진동(음파)을 보내고 그 반향을 파악하면 초음파 진단기법이 된다. 전압을 걸어 반응(전류)을 확인하는 것은 대상물의 전기적 특성 파악에 필수적이다. 반향의 물리학이 드러내고 있는 고대인들의 흔적이 우리를 어떤 미지의 과거로 안내할지 자못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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