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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승려 앞세워 '反무슬림' 가속화하는 스리랑카 고타바야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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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관보인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 가제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직속으로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One Country, One Law)’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TF는 기존 법률 개정안들과 법무부가 마련한 법 개정안 초안을 검토한 뒤, 내년 2월 28일까지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스리랑카 법 체계 개혁을 위한 밑그림을 구상하려는 목적이다. 단장은 승려인 갈라고다 아트테 그나나사라가 맡았다.
그나나사라는 극단주의 불교 단체인 보두발라세나(BBS·‘불교도의 힘’이라는 뜻)의 사무총장이다. 그가 2012년 즈음부터 노골화한 ‘반(反)무슬림 운동’의 핵심 인사라는 사실은 TF가 다루게 될 법 체계 개정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학계와 종교계, 시민사회 등 너나없이 모두가 TF를 반대하며 들고일어났다. “인종적·종교적 갈등을 조장할 위험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다. 스리랑카 가톨릭 주교단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을 강력히 규탄했다. 아울러 모든 소수민족 공동체가 법 앞에서 동등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스리랑카 싱크탱크 ‘대안정책센터(CPA)’도 “당장 TF를 해체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CPA는 “TF 인적 구성을 보고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며 “이 나라의 경제적 위기가 유례없이 심각한 와중에도 종교적 소수자를 겨냥한 폭력과 공격을 부추겨 온 성직자에게 도리어 ‘프로모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CPA는 또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 타이틀 자체가 ‘주류 중심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며 “스리랑카 법 체계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현행 법 체계가 소수민족 공동체에 이익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여기서 ‘스리랑카 법 체계 역사 왜곡’이란 스리랑카만의 독특한 관습법 체계를 무시한, ‘신할라족·불교·민족주의’ 중심 정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스리랑카에는 다수 종족인 신할라족, 소수 타밀족, 그리고 또 다른 소수 무슬림 등 각 공동체마다 고유한 관습법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북부 타밀 지방에는 재산권과 관련한 ‘테사발라마이’라는 관습법이 있고, 중부 캔디 지방을 중심으로 한 고산지대 신할라 공동체는 캔디왕국(15세기 말~19세기 초) 유산으로 남아 있는 이른바 ‘캔디안 법’을 따른다. 무슬림에게는 결혼과 이혼 같은 가족 관계와 개인사 등을 규정한 ‘무슬림 법’이 적용된다. 물론 이 관습법들은 모두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법 체계로 개혁하겠다는 고타바야 정부의 의도는 ‘시대와 상식에 맞게 관습법을 뜯어고치겠다’는 최소한의 진보적 동기마저 결여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은 2019년 11월 스리랑카 대선 당시 고타바야 대통령이 내세웠던 선거운동 캠페인 구호이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같은 달 18일 취임식에서 “나는 신할라 불교도들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그나나사라가 TF 단장으로 임명된 배경에 불순한 정치적 동기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이달 1일 기자회견에서 그나나사라는 자신이 이끄는 BBS의 자문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자체도 대통령미디어센터가 주관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수많은 TF를 꾸렸다. TF들은 주로 군인 또는 승려로 채워졌다. 일례로 올해 6월 2일 출범을 알린 ‘안전한 나라, 규율과 도덕과 법이 지배하는 사회 건설을 위한 대통령 직속 TF’는 온전히 군인, 경찰, 정보국 요원들로만 구성됐고, 단장은 은퇴 군인 출신인 카말 구나라트네 국방장관이었다.
스리랑카 여성운동가이자 무슬림인 쉬린 압둘 사루어는 중동 전문매체 알자지라의 토론프로그램에서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 캠페인은 ‘반무슬림’ 그 자체”라고 못 박았다. 이런 비판은 고타바야 집권 2년을 되돌아보면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일관적·지속적으로 반무슬림 정책을 펴 왔다. 올해 4월 27일 스리랑카 내각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행위 △1,000개 이상의 이슬람 종교학교 ‘마드라사’ 등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 법을 제안한 사라트 위라세케라 공공안보 담당 장관은 “부르카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메드 샤히드 유엔 ‘종교와 신념의 자유’ 특별보좌관은 “부르카 금지는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한 국제법과 양립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장례 문화에서도 충돌이 빚어졌다. 지난해 2월 고타바야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해선 화장만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시신을 화장하는 힌두교나 불교를 믿는 신도들에겐 문제 될 게 없지만, 화장을 금지하고 있는 무슬림으로선 반발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결과적으로 이는 “무슬림의 장례 문화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수개월간 국제사회의 비난과 국내 무슬림들의 항의가 빗발친 끝에 결국 취소됐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올해 2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스리랑카 전직 군 장성과 정보국 출신 인사가 민간 행정기관 요직에 임명된 사례는 28건이나 된다. 시벤드라 시바 장군도 그중 한 명이다. 2009년 스리랑카 내전 당시 58여단장이었던 그는 타밀족 학살로 이어진 군사 작전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고타바야 대통령은 그를 코로나19 대응 관련 대통령 직속 TF ‘코로나19 예방국가작전센터(NOCPCO) 센터장’에 임명했다. 시벤드라는 작년 2월 국방 참모총장 대행 자리에 올랐고, 같은 해 12월엔 장군으로 진급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전쟁범죄자’ 명단에 올라 각종 제재를 받지만, 고타바야 정권하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OHCHR는 “스리랑카 정부가 각종 TF와 위원회를 통해 군인들을 민간 행정 영역으로 침투시키고 있다”며 “민주주의 가치와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스리랑카 무슬림 공동체가 더욱더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학계에서는 승려들이 득세하고 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이달 초 콜롬보대 총장에 불교 승려 무루트테투웨 아난다 테로를 임명했다. 콜롬보대 과학교수단(UCSTA)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이 거셌으나, 임명은 철회되지 않았다. 오히려 고타바야 대통령은 무루트테투웨에 대해 “이 정부가 집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면서 보은 인사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앞서 그나나사라는 9월 말 TV 인터뷰에서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의 배후는 알라”라고 말했다. 당시 콜롬보와 주변 지역 교회와 호텔 등 8곳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 200명 이상이 숨지고 450여 명이 다쳤다. 그는 또 “유사한 테러 공격이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나나사라는 “내가 앨버트 맬컴 란지스 대주교에게 부활절 테러 공격을 미리 경고했었다”고 말했다. 가톨릭계는 사실이 아니라고 크게 반발하며 그나나사라의 주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그의 모든 발언에 가장 긴장하는 건 당연하게도 무슬림 공동체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스리랑카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부활절 테러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반무슬림 정서를 타고, ‘국가 안보’를 내세우면서 권좌를 꿰찼다. 지난 2년간 거의 집착에 가까울 만큼 ‘군인’과 ‘승려’로만 점철된 고타바야식 인사와 행정은 스리랑카 인종 분쟁의 근본 원인인 ‘군사주의’와 ‘불교 민족주의’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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