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불법처방 의사 태반이 면허 유지… 배경은 '솜방망이' 형사처벌

입력
2021.11.19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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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마약류 불법 처방 최소 24명 행정처분
대부분 벌금형 이하 처벌 불구 이에 비례해 제재
면허취소는 6명 불과… 대개는 길어야 3개월 정지
"사회적 해악 초래할 위험 큰 만큼 처벌 강화해야"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의사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의사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부산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2016년 2월 남편 명의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셀프 처방'을 내고 자신이 투약했다. A씨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남편이나 부모님 명의를 빌려 3년에 걸쳐 140여 차례 마약류를 투약하다가 적발됐다. 그러나 A씨가 올해 6월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행정처분은 자격정지 1개월 15일에 불과했다.

마약류를 불법 처방했다가 적발된 의사 대부분이 보건당국으로부터 1~3개월 자격정지의 비교적 약한 제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류 불법 처방은 의료법이나 마약류관리법 위반 행위로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되지만, 막상 사법기관에서 이를 엄벌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18일 한국일보가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의사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내원하지 않은 환자 명의로 마약류를 처방한 혐의로 복지부의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는 최소 24명으로 나타났다. 여기엔 부정 처방한 마약류를 의사 자신이 투약한 사례도 포함됐다. 처분 대상 가운데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아 면허가 취소된 의사는 6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최단 1개월, 최장 3개월 15일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마약류 불법 처방 의사에 대한 행정제재 수위가 낮은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기소되더라도 벌금형을 받는 데 그치는 현실과 직결된다. 복지부가 통상 해당 사안에 대한 행정처분을 형사처분 결과를 보고 나서 이에 비례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의사들도 부정 처방 외 다른 혐의가 추가돼 형량이 높아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A씨의 경우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돼 의사면허가 박탈될 위기에 처했다. 재판부는 "마약류 오남용의 심각성을 잘 아는 의사인데도 장기간 타인 명의로 처방전을 발급받아 투약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 벌금 700만 원으로 감형받아 면허 취소를 면했다.

사법처리 수위에 따른 행정처분 감경 규정도 의사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은 같은 위반사항이라도 기소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엔 보다 가벼운 처분을 허용한다. 원래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라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하면 4개월 이상 자격정지로, 법원이 선고유예 판결을 하면 6개월 이상 자격정지로 제재 수위가 낮아지는 식이다.

의사 B씨는 2018년 이미 사망한 환자의 명의로 그 가족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해준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지난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올해 6월 자격정지 1개월을 받았다. 반면 내원하지 않은 환자 명의로 처방전을 발급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은 의사 C씨는 2개월 7일간 의사 자격이 정지됐다.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불법 처방한 마약류가 자칫 범죄에 악용되거나 중독자를 양산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행정처분이나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사 출신 박호균 변호사는 "마약류 처방으로 사회문제를 초래하는 데 관여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짧은 면허정지 처분에서 그치면 안 된다"며 "복지부가 규칙을 개정해 행정처분을 강화하거나 마약류관리법 등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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