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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높은 열정의 시절'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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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조해진의 '환한 숨'은 2014년에 발표한 자전소설 '문래'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까지 총 아홉 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문래'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최근 작품인 '높고 느린 용서'의 순서로 읽다 보면 촛불집회와 탄핵으로 들끓었던 최근의 한국사회와 1970년대의 산업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까지도 가닿게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의 현실은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일하는 사람들에 관한 서사라고도 할 수 있다. 빌딩 청소 용역, 기간제 교사, 단기 프로젝트 계약직 직원 등,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는 인물들은 파업이나 경제 불황의 여파 등 책임 소재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이 중단되거나 폐기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신자유주의 환경에서 어느 한 개인이 노동 현장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그 개인만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는 없을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팬데믹 자체보다 고용 불안일 수 있는데 그렇기에 인물들의 상황에 공감하게 된다.
일자리를 잃어 불안감이 가중된 상태의 인물들은 과거에 일을 통해 만났던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20년 전’ 혹은 ‘7년 전’, ‘작년 여름’ 같은 특정 시기로 되돌아가거나 ‘홍천’이나 ‘문래’ 같은 장소로 가거나 그 장소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의 질감에 기대어 인물 자신의 안과 바깥을 사유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소년 M은 왜 수은중독으로 죽어가야 했나.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살 것인가. 글을 쓰는 최초의 감각과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하는 대답을 마련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조해진의 이번 작품집은 예술적 표현이라는 것이 외부 세계의 경험과 내적 의식의 충돌의 흥정물이라고 했을 때, 그 둘의 융화가 가장 자연스러운 작품이고 서술이나 구성 등 소설의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한 정점을 이루고 있다. 조해진의 소설은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으므로 ‘숨을 쉴’ 수 있다는 다독임으로도 들리고, 당신 삶은 결국 환한 그 어떤 세계 쪽으로 향하게 된다는 예언으로도 들린다. 지금 누군가에게는 가장 필요한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책 전체 타이틀이면서 작품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으나 작품 편편이 녹아있는 ‘환한 숨’의 이미지는 편의상 택한 수사가 아니고 작가의 소설적 인식에서 비롯된 고심의 표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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