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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법원, 헝가리 反난민 '스톱 소로스'법에 제동

입력
2021.11.17 18: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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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유럽연합이 보장하는 권리 침해한 법"
'즉각 수정' 명령도... 헝가리도 '일단 수용' 방침
반난민 기조는 유지... 'EU vs 헝가리' 대립 계속

2016년 10월 세르비아에 발이 묶여 있던 난민 300여 명이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헝가리와의 국경 지대로 행진하던 중, 일부 이민자가 국경 개방을 요구하는 문구를 적은 종이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베오그라드=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10월 세르비아에 발이 묶여 있던 난민 300여 명이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헝가리와의 국경 지대로 행진하던 중, 일부 이민자가 국경 개방을 요구하는 문구를 적은 종이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베오그라드=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럽연합(EU) 최고 사법기관이 헝가리 우파 민족주의 정부의 반(反)난민 노선에 제동을 걸었다. 3년 전부터 헝가리는 망명자들을 돕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해 왔는데, 그 근거가 된 법률에 대해 ‘EU 원칙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헝가리 정부는 일단 ‘수용’ 방침을 밝혔으나, ‘이민자 배척’ 방침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난민 정책을 둘러싼 EU와 헝가리 간 대립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유럽사법재판소(ECJ)는 2018년 6월 헝가리 의회를 통과했던 반난민법, 이른바 ‘스톱 소로스(Stop Soros)’ 법안에 대해 “EU 망명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제적으로 보호를 신청한 사람들(난민)에 대해 EU가 보장하는 (개인과 조직의) 접근권·의사소통권을 제한하고, 망명 신청자들이 법률가와 상담할 권리도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법이 ‘지체 없이’ 바뀌지 않으면, 재정적 불이익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의 법은 ‘난민 체류를 돕거나 재정적 지원을 한 개인·단체’에 최고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헝가리 의회 통과 당시 찬성 160표, 반대 18표였을 정도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헝가리 출신 미국 억만장자인 조지 소로스의 이름이 법안에 붙은 건 그가 난민 지원 단체를 후원했기 때문이다. 난민을 ‘독(毒)’으로 표현해 온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소로스가 우리나라에 무슬림을 끌어들여 유럽 문화의 기본 가치를 훼손하려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EU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같은 해 7월 EU 집행위원회는 “EU의 기본권 헌장을 위반한 행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 달 뒤 유럽의회도 헝가리의 의회 내 표결권 제한 결의안을 채택, 법안 수정을 압박했다. 하지만 오르반 정권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해당 사안은 결국 ECJ로 넘어갔고, 3년여가 흘러서야 브레이크가 걸렸다.

국제사회는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다비드 비그 국제앰네스티 헝가리 국장은 “난민 권리 보장에 힘쓰는 사람들을 겨냥한 협박을 용납할 수 없다는 뚜렷한 메시지”라며 “헝가리 정부는 부끄러운 법률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도 “오르반 정권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EU 집행위원회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헝가리 정부는 ‘일단 수용’ 의사를 밝혔다. 법안 철회 또는 수정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EU 법과 일국의 헌법 중 무엇이 상위법인가’의 문제를 두고 EU와 마찰을 겪는 이웃나라 폴란드의 전철도 밟지 않게 됐다. 다만 헝가리는 “난민 정책엔 변함이 없다”며 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졸탄 코바치 정부 대변인은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헝가리가 ‘이민자의 나라’가 되는 건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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