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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확산에도 동·서유럽 사망률 '천양지차'… 백신 접종이 갈랐다

입력
2021.11.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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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서 코로나 사망자 연일 증가
"루마니아서 매일 마을 하나씩 사라져"
EU 평균 접종률 66% vs 루마니아 34%

8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8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유럽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동유럽은 사망자 수가 손 쓸 새도 없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또 한 번의 코로나19 대유행 ‘진앙’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서유럽도 겨울철 시작과 함께 감염병 위험 수위가 높아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상황은 좀 다르다. 확진자는 급증해도 사망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생존’과 ‘죽음’이라는 운명을 가른 결정적 변수는 백신 접종률이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동유럽, 이중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들이 코로나19 사망의 물결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발칸반도 국가인 불가리아와 라트비아, 루마니아는 연일 코로나19 사망자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하루 평균 1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루마니아의 경우, 지난달 말부터 일일 사망자 수도 300~400명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9월까지만 해도 숨진 사람이 두 자릿수에 그쳤으나, 불과 두 달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부쿠레슈티대 의대의 카탈린 시르스토이우 응급병원장은 “이번 주 루마니아에서는 매일 마을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4,000명가량이 감염되는 불가리아에서도 날마다 10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더욱 심각한 상태다. 지난 일주일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인구 100만 명 대비 하루 평균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각각 22.8명과 21.8명이다. 라트비아는 18.8명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 전체의 같은 기준 사망자 수가 3.0명인 점을 감안하면, 6~7배나 많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100만 명당 일일 사망자수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30배가 넘는다”고 전했다.

5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5일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물론 서유럽 감염병 상황도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1만2,500여 명이 신규 확진 판정을 받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후 감염자가 꾸준히 늘자 정부도 ‘5차 대유행’을 선언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마스크를 벗어 던진 영국은 이날 하루 3만6,500여 명이 코로나19에 새로 감염됐다. 3주 전 ‘5만여 명 확진’보다는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3만~4만 건을 오가는 중이다.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 수 상위권은 영국(유럽 1위)과 프랑스(3위) 독일(5위) 등 서유럽 국가들이다.

그러나 동서 간 양상은 판이하다. 서유럽에선 확진자가 급격히 늘었을 뿐, 사망자 수는 답보 상태다. 반면, 동유럽은 희생자가 급증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유럽 내 인구 100만명 당 사망자 수 1위’라는 오명을 차지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2위) 헝가리(5위) 루마니아(8위) 등 상위 10개국 중 6곳이 동유럽 국가다.

삶과 죽음을 가른 최대 원인은 코로나19 백신이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각각 34%, 23%에 그친다. 보스니아도 21% 수준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덴마크 등이 70%를 바라보고, EU 전체 평균이 66%인 점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루마니아에서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이끌고 있는 래드 아라파트 박사는 “현재 코로나19 입원자의 92%가 백신을 맞지 않았다”며 “가짜 백신 접종 증명서를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추정돼 실제 미접종자 비율은 더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백신 접종률 탓에 확진자가 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면서 사망자 수도 늘었다는 얘기다.

8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장 직원들이 코로나19 사망자의 관에 못을 박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8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장 직원들이 코로나19 사망자의 관에 못을 박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접종 속도가 더딘 건 백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들 국가에도 코로나19 백신 공급량은 충분했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국민들의 불신, 그리고 일부 종교의 ‘반(反)백신 신념’ 설파다. 일단 수십 년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국민들이 국가의 ‘접종 호소’를 믿지 않는다. 올해 초 EU 자체 여론조사 기관인 유로바로미터 설문에 따르면, 루마니아인의 31%, 라트비아인 26%, 크로아티아인 22%만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은 “의료체계를 불신한다”고도 했다. EU 회원국 평균(1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루마니아 싱크탱크 ‘글로벌포커스’의 오아나 포페스쿠 국장은 “정부가 30년 만에 갑자기 (국민들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면 당연히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가디언도 “전(前) 공산국가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가 ‘저조한 백신 접종률’로 이어졌고, 빈곤과 저개발, 낮은 수준의 보건교육으로 정의되는 ‘동서(東西) 단층선’을 노출시켰다”고 설명했다.

종교 영향도 작지만은 않다. 그리스정교(루마니아)와 범(凡)그리스정교로 분류되는 러시아정교(라트비아)의 일부 사제들이 대면 예배와 온라인에서 백신 효능을 부정하며 접종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어도 큰 효과는 없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보수적 성향인 데다,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그리스정교회 사제들의 백신 반대 신념이 동유럽을 새로운 코로나 진앙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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