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메타-서울의 하루

입력
2021.11.13 00: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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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21년 겨울, 무명 작가 심너울(27)씨는 다음 대선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는 고향 마산으로 내려가 친구에게 뒤통수를 야구배트로 가격해 달라고 요구했다. 친구는 심너울씨의 요구대로 했고, 심너울씨는 약 5년 뒤에 깨어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욕망했고 비슷한 주제로 싸웠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던 심너울씨의 작업실도 그대로였다. 사소한 문제는 작업실 옆에서 인부들이 매일 오전 일곱 시만 되면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민원을 쓴 심너울씨가 새올전자민원창구에 접속했을 때, 그를 맞은 것은 해당 창구가 폐쇄됐다는 팝업이었다.

알고 보니 2022년부터 추진된 '메타버스 서울' 계획의 일환으로, 모든 민원 창구가 메타-서울로 일원화한 것이었다. '메타-서울의 메타-민원실에서 메타-공무원을 찾아 주세요!' 심너울씨는 텍스트 위주로 살아가는 고루한 사람이었고 5년을 점프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번거로운 과정 끝에 메타-서울 블록체인에 자신을 등록한 심너울씨는 자신의 메타-캐릭터를 만들었다. 메타-캐릭터가 실제의 자신과는 달리 거북목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심너울씨의 메타-캐릭터는 메타-광화문광장에 떨어졌다. 썰렁한 광장을 잠시 둘러보다 흥미가 떨어진 심너울씨는 메타-연남동 행정복지센터로 자신의 메타-캐릭터를 이동시켰다. 다행히 온라인 게임을 오랫동안 즐겼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이동하는 동안 심너울씨는 관광상품으로 광고되던 메타-경복궁을 보았다. 구글에 검색하면 바로 얻을 수 있는 3D 모델과 똑같았다.

30분간의 메타-이동 끝에 심너울 씨는 메타-연남동 행복센터에 도착했다. 추상화된 인터페이스로 돌아가는 웹페이지와 달리 가상 공간을 현실적으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심너울씨는 메타-번호표를 뽑아들고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한 메타-캐릭터가 행복센터 안을 어지러이 방황했다. 메타버스의 캐릭터 조종 자체를 어색해하는 듯했다. 메타-캐릭터는 다른 모든 메타-캐릭터처럼 20대의 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뒤에는 2030이 있을지 8090이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심너울씨는 메타-공무원과 대면할 수 있었다. 심너울씨는 채팅으로 방금 전에 썼던 민원을 복사해서 올리려고 했지만 텍스트 분량에 한계가 있었다. 오전에 미리 찍어둔 사진을 어떻게 업로드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메타-공무원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메타-공무원이 메타-귓속말로 제안했다. 혹시 이 메일 주소로 보내 주실 수 있나요? 메타-공무원은 심너울씨처럼 메타-서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너울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메일로 사진을 첨부한 민원을 보내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공무원은 빠른 시일 내에 공사 현장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메타-캐릭터로는 공사 현장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메타-서울에서 로그아웃하자 세 시간이 지났다. 창문 밖으로 현실의 분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2026년에는 가상과 현실 모두에서 시민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건 쉽지 않다고 심너울씨는 생각했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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