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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친부모 찾을 확률 1%… "모든 제도가 입양인 편 아냐"

입력
2021.11.18 04: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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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루스의 엄마 찾기' 열흘 동행 취재 ③>
친생부모 찾기 청구 9,022건 가운데
2,438건은 기록 전혀 없는 '정보 미비'
입양기관 동의 없인 자기 서류도 못 봐
입양기록 전산화 응한 기관 절반도 안돼
루스씨 "부모찾기에 전폭 협력 이뤄지길"

편집자주

친부모를 찾고자 하는 해외 한인 입양인 중 1%만 소원을 이룬다. 출생 과정의 기록을 지우고 입양을 보냈던 잘못된 관행 탓이다. 유전자 정보로 찾는 방법이 있지만 부모가 등록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생후 5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로라 루스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36년 만에 엄마 찾기에 나선 루스씨가 한국에서 보낸 10여 일을 동행 취재했다.

36년이라는 간극을 메우기엔 아무래도 10여 일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한인 입양인 로라 루스(36)씨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지 못한 채 이달 14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루스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자신이 열 달을 꽉 채워 3.6㎏의 건강한 몸으로 서울 방화동의 ‘김순감 조산원’에서 태어났다는 걸 확인했고, 입양 전 5개월 동안 자신을 길러준 위탁모도 만났다. 모든 출생 기록이 지워진 채 타국으로 보내진 많은 해외 입양인의 처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루스씨는 “입양 제도도, 부모 찾기 제도도 모두 입양인의 편이 아니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로라 루스(36)씨가 2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담당 직원으로부터 '입양인 친가족찾기' 프로그램설명을 듣고 있다. 영상기획팀.

로라 루스(36)씨가 2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담당 직원으로부터 '입양인 친가족찾기' 프로그램설명을 듣고 있다. 영상기획팀.


입양기관 동의 없으면 자기 입양서류도 못 봐

가족 찾기를 희망하는 입양인들은 첫발도 떼기 전에 한국에 자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껴야 한다. 2015년부터 올해 5월까지 보건복지부에 접수된 해외 입양인 부모 찾기 신청 9,022건 중 절반에 가까운 비율(41.4%·3,734건)이 입양서류 등 관련 기록이 일절 남아있지 않은 ‘정보 미비’(27%·2,438건) 상태이거나 ‘기아(棄兒·버려진 아이)’로만 기록된 경우였다. 해외 입양의 편의를 위해 있던 기록도 지워버린 경우가 많았다. 이경은 국경너머인권 대표는 “과거에는 기아가 아닌 경우에도 호적을 새로 만들어 입양을 보냈다”며 “입양기관은 실제 친부모가 누군지 알았지만, 입양인은 자신의 부모를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장벽은 입양기록 작성부터 사후기록 관리까지 입양절차 전반을 민간 기관이 도맡아 진행하는 현실에서 비롯한다. 현행법상 입양서류는 입양기관 소유여서 해당 기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입양 당사자라도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입양기관이 친부모에 대한 인적 사항을 남겨놓고도 입양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지부가 ‘입양정보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과거 입양서류 전산화에 나섰지만, 자료 제공에 동의하는 비율도 낮다. 420개 입양 관련 기관 중 정부의 정보 공개 요청에 응한 곳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9곳뿐이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입양기록물 자체가 입양기관의 고유 정보여서 공개를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입양인에게 기관이 친부모 정보를 제공할 의향이 있더라도, 친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다. 입양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도 있지만 현행법상 입양서류에 적힌 주소로 우편을 보내 친부모 동의 여부를 묻도록 제한된 탓에 응답률이 낮다. 데이브 리프 해외입양인연대 친생가족찾기 어드바이저는 “현행 제도는 친부모의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겨, 우편으로 만나보겠는지 여부를 묻고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라면서 "수십 년 전 주소로 보내는 만큼 실제 도달 여부조차 확인하기 힘든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실종아동법에 근거한 해외입양인 가족찾기

아동권리보장원이 친생부모의 입양인과의 상봉 동의 여부를 발송하는 편지 양식.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아동권리보장원이 친생부모의 입양인과의 상봉 동의 여부를 발송하는 편지 양식.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루스씨처럼 많은 입양인들이 유전자(DNA) 검사로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 또한 성공 확률이 낮다. 입양인 가족 찾기가 ‘실종아동보호법’에 근거하고 있는 탓에 실종아동찾기센터에 등록된 DNA만 대조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등록된 부모의 DNA는 4,108건에 불과하다. 1970년 이후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 아동만 10만6,332명인 점을 감안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다.

입양인들은 정부나 민간이 다른 목적으로 보유한 DNA까지 대조가 가능해지길 바란다. 2019년 16.8%의 DNA 일치율을 보인 조카를 통해 극적으로 친가족을 만난 카라 보스(38·한국명 강미숙)씨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보스씨 조카가 핼러윈 축제 때 학교에서 나눠준 DNA키트를 통해 가족 혈통 찾기 사이트에 유전자 정보를 등록했고, 그 덕분에 기적 같은 가족 상봉이 가능했다.

이 같은 제약 때문에 해외 한인 입양인이 친부모 찾기에 성공하는 비율은 1% 미만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청된 입양정보청구 1,381건 가운데 '상봉'이 성사된 사람은 10명에 그친다. 올해는 5월까지 599건 중 4명뿐이다.

정치권에선 제도 개선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해외입양 문제를 복지부가 책임지도록 하는 ‘국제입양법’과 입양인이 경찰과 통신사업자 등을 통해 친부모의 소재지와 연락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관련법을 대표 발의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양인이 본인의 입양정보나 친생부모를 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과거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벌어진 무책임한 입양 결정, 정부의 소극적인 행정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스씨 “머지않아 다시 한국에 올 거 같다"

36년 전 맨몸으로 미국으로 입양 갔던 루스씨는 다시 빈손으로 뉴욕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귀국길에 오르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나를 낳아준 엄마를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움을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뜻도 전했다.

루스씨는 “친부모 찾기는 보통의 입양인들에게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며 “당장은 입양인이 자신의 기록에 적극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협력과 노력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머지않아 한국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입국장 안으로 사라졌다.

원다라 기자
인천=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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