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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7%는 남자, 여자가 아닌 '제3의 성'으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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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17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조각한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Sleeping Hermaphroditus)'가 있다. 조각상은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엎드려 잠을 자는 모양새인데 살짝 드러난 옆모습에서 젖가슴과 페니스가 함께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자로 원래는 아들이었으나 그에게 반한 물의 요정 살마키스의 소원대로 한몸이 되면서 남성과 여성의 몸을 함께 갖추게 되었다.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을 뜻하는 '양성구유'의 영어 이름 'Hermaphroditos'는 바로 여기서 나왔다.
남성과 여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는 물론이고 탈무드, 인도신화 등 인류 문명의 곳곳에서 발견되며 때로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성차별에는 좀 더 권력을 가진 성(남성)이 다른 성(여성)에게 가하는 억압도 있지만,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에 가하는 폭력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성과 여성 중 한쪽을 반드시 골라 등록해야 하고, 이렇게 등록된 성별을 근거해 모든 공무와 사법체계가 돌아간다. 남녀로 나뉜 것은 화장실, 기숙사, 목욕탕, 주민번호 뒷자리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는 남성이라고도, 여성이라고도 구별할 수 없는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는 스스로 남성이라고도, 여성이라고도 느끼지 않는다.
간성 혹은 인터섹스(intersex)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성질을 지닌 사람들을 일컫는 포괄적인 용어다. 앞서 설명한 양성구유가 생식기를 중심으로 한 용어라면 인터섹스는 이보다 더 폭넓은 개념인 셈이다.
성별을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난소와 정소 같은 생식샘? 외부 생식기? 성호르몬? 성염색체? 이 모든 기준 중 완벽하게 남성과 여성을 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연이 다양성과 예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듯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너무도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미국 브라운대 교수 앤 파우스토 스털링은 1993년 그의 글 '다섯 개의 성: 왜 남성과 여성으로는 충분하지 않나'에서 "최소한" 다섯 개의 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herms", "merms", 그리고 "ferms"가 더 필요하다는 거다.
"herms"는 진성반음양(true hermaphrodites)으로 하나의 정소와 하나의 난소를 갖는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의 생식기관에서 난소와 정소가 함께 자란 '난정소(ovotesties)'가 자라기도 한다. '진성/true/참'이라는 표현이 붙기는 했지만 진성반음양은 인터섹스 중에서도 드물어서 10만 명당 1명꼴이다.
한편 가성반음양(pseudohermaphrodites)은 보통의 남성(XY)과 여성(XX) 염색체 쌍과 일치하는 두 개의 생식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외부의 성기와 2차 성징은 염색체쌍의 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가령 "merms"는 남성 가성반음양(male pseudohermaphrodites)으로 XY염색체를 가지고 정소가 있지만 동시에 클리토리스와 질이 있으며 사춘기를 겪으며 가슴이 발달한다. 생리는 하지 않는다.
"ferms"는 여성 가성반음양(female pseudohermaphrodites)은 XX염색체를 가지지만 최소한 부분적으로 남성 생식기를 가지며 사춘기를 지나며 턱수염, 저음의 목소리, 성인 크기의 페니스가 발달할 수 있다.
이처럼 파우스토 스털링은 다섯 개의 성을 제안하지만, 이 역시도 그의 임의적인 구분일 뿐 인터섹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두 포괄하지는 못한다.
초기 배아는 여성과 남성으로 모두 분화가 가능하다. 태아의 발생 과정 초반에 여성이나 남성으로 성 분화가 이루어지는데 생식샘의 경우 난소나 정소로, 초기 팔루스(phallus)는 클리토리스나 페니스로 성장한다. 그러나 난정소(ovotestis)처럼 중간 단계 역시 흔하게 존재하며 그 정도와 기준 역시 다양하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7%는 인터섹스로 태어난다. 이러한 비율 역시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지는 않다. 가령 부모에게서 CAH(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아이는 XX염색체를 가지면서 동시에 남성 생식기를 갖고 임신이 가능한 생식기관을 갖는다. CAH는 뉴질랜드에서는 100만 명당 43명의 아이에게 발견되지만, 알래스카 서남쪽의 유피크 에스키모(Yupik Eskimo)에게서는 100만 명당 3,500명의 아이에게서 발견된다(Fausto-Sterling, 2000;20).
어쨌건 유엔 통계에 따라 1.7%가 인터섹스라고 가정한다면, 대한민국에만 총 87만 명의 인터섹스 인구가 있는 셈이다.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일상에서 인터섹스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인터섹스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많은 경우 인터섹스가 태어나자마자 소위 '정상화' 수술을 통해 한쪽의 성별로 교정당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본인도 알지 못한 채 부모에 의해 성별이 어느 한쪽으로 정해지는 셈이다.
또 스스로 인터섹스임을 알지 못한 채로 자신이 가진 성기가 이상이 있는 '질환'으로 여겨 진단을 받고 수술받는 경우도 있다. 요도하열은 소변이 나오는 요도 구멍이 정상적인 위치보다 뒤쪽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요도 구멍이 아래쪽 음경 피부에 있기도 하고, 음낭이나 회음부 등에 위치하기도 한다.
서울아산병원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요도하열은 남자에게 많이 발생하며 남자 출생의 300~500명에 1명 비율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또 "취학 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으며, 대부분 2세 이전에 수술을 받도록 권유한다"고 소개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2018년 8월 기고된 글 "'인터섹스'로서 느끼는 내 존재의 무게"에서 청킹은 이렇게 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요도하열이란 진단을 받고 바로 남성의 성기처럼 보이도록 수술당했다. 요도하열 증상 가운데에는 배뇨활동 등에 차후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어서 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자아이가 앉아서 소변을 보게 하지 않기 위해서', '정상적인 성기 모양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사람 만들어주기 위해서' 등의 이유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는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인터섹스는 자웅동체 취급을 받거나, 심각하게 결격 사유가 있는 남성 혹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작금의 의료계에서는 그런 존재다. 자기 신체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 우리들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의사들은 의사 본인이나 부모의 판단에 따라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사실 이것을 '수술'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인터섹스가 태어나자마자 겪는, 그래서 스스로가 인터섹스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이 과정은 수술이 아니라 '개조'에 가깝다. 개조하기 이전의 인터섹스들은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원죄 덩어리로 태어난다. 개조당함으로써 그제야 '면죄부'를 얻고 사회에 편입된다. (중략)
마지막 수술을 끝내러 수술실로 들어가던 그때는 지금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평소 눈물이 적었던 나는 그때서야 울음을 터뜨렸었다. 그간 느끼지 못했던 공포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렇게 울다가 지쳐, 마취제 때문인지 곧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수술은 끝나 있었고 내 몸은 다시 하얗고 높은 천장을 가진 병실에 놓여 있었다. 여섯 살 남짓 되던 해였다."
인터섹스로 태어난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수술과 치료의 대상이 된다. 남성 혹은 여성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특징과 외모를 바꾸기 위해 신체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원하지 않은 고통을 겪는다. 부모가 교정하여 생물학적으로 결정한 성이,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정체화한 성과 다를 수도 있다. 누구든 충분한 정보와 상담을 바탕으로 직접 자신의 성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수술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인터섹스의 삶은 비참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오만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정상성에 부합하는 성별과 삶만이 옳다는 편견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감춰진, 감춰져 온 수많은 인터섹스를 생각하며 쓴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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