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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전성기는 지났는데 가격은 오르네... 해법은 '치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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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지난 10월 1일부로 우윳값이 올랐다. 서울우유가 가장 먼저 나선 우윳값 인상은 2018년 이후 3년 만이다. 인상 폭은 5.4%, 마트 기준 1ℓ 제품이 2,500원대에서 2,700원대로 올랐다. 매일, 남양유업 등도 비슷한 폭으로 가격을 올렸다.
서울우유는 누적된 부자재 가격, 물류 비용 및 고품질의 우유 공급을 위한 생산 비용 증가 등으로 우윳값을 불가피하게 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원유 가격도 올 9월부터 ℓ당 21원씩 올랐다.
우유의 가격 인상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업계가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유의 소비가 갈수록 감소하는데 가격이 오르는 현실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윳값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의 소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6.3kg으로, 1999년 24.6kg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전반적인 인구 감소와 취향의 변화가 우유 소비 감소의 원인이다. 초등학교 급식이나 군 배식으로도 물량을 충분히 소비 못하는 한편, 음료으로서 우유를 점점 더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잉여분을 가공하는 분유 재고량도 이를 반영한다. 올해 2월 기준 1만2,109톤으로, 사상 최대치였던 2016년 9월분(1만2,609톤)의 뒤를 쫓는 수준이다.
이런데도 가격이 오른다면 우유가 시장, 즉 공급과 수요의 영향을 받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유의 가격은 2013년에 도입된 '원유가격연동제'로 책정된다. 원유가격연동제는 2011년 구제역 파동 이후 낙농가들이 타격을 입자 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도입한 제도이다.
수요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할 수 없는 낙농업이다 보니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는 현실이다. 제도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우유를 사고자 지갑을 열면 생각이 바뀌어 버린다. 수요가 꾸준히 줄고 있음에도 가격은 상승한다. 이런 현실을 보통의 소비자가 얼마나 유연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1937년 낙농인 21명이 모여 '경성우유협동조합(서울우유의 전신)'을 결성한 지 약 85년, 한국에서 우유는 쇠락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우유가 포함되지 않은 고유의 식문화가 쇠락의 근본 원인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버터와 치즈 등 유가공품까지 포함해 폭넓게 우유를 소비하는 미국의 사례만 보아도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우유는 총체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서 미국의 농부들은 우유를 그냥 버리고 있다. 생산해 봐야 레스토랑 등의 영업 중단 및 폐업으로 판로가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우유에 불리해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결정타를 맞은 셈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우리는 우유를 마셔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우유 소비량은 계속 감소세였으며 목축업의 지평도 바뀌고 있다. 목장이 폐업하고 있고, 소 대신 염소를 키우는 등 변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유의 입지는 대체 어떻게 쇠락하게 된 걸까? 사실 우유가 꽃길만 걸어왔던 것도 아니다. 박테리아에 상하기도 쉬워, 150년 전만 하더라도 우유는 위험한 음료였다. 그러다가 루이 파스퇴르(1822~1895)의 저온 살균법(pasteurization) 덕분에 좀 더 안전해졌다. 한편 우유가 칼슘을 비롯한 필수 영양분을 많이 함유했음이 밝혀져 효율적인 영양원으로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세계 1차대전과 맞물려 우유의 수요가 폭증해, 미국은 7억5,300만 파운드(약 34만 톤)를 동맹국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해외 수요가 대폭 줄어들면서 우유는 처치 곤란한 상황에 처해버렸다. 그래서 농산부는 '건강을 위한 우유(Milk For Health)' 캠페인을 출범했다. 우유가 어린이들의 건강, 특히 치아와 뼈에 좋은 식품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캠페인 덕분에 6년 동안 우유의 소비는 27%나 증가했다. 1926년에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에게 매일 1파인트(473ml)의 우유를 권장량으로 추천했는데, 1937년에는 두 배로 늘어 1쿼트(946ml)가 되었다.
그러다가 1920년대 말 대공황에 이르자 우윳값이 폭락했다. 미국 중서부의 농부들은 태업에 들어가 도로를 막고 트럭의 운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우유를 쏟아 버리기도 했다. 유통되는 우유의 양이 줄어들어야 가격이 오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1937년, 미국 하원은 우유의 최저가를 보장해주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오늘날까지도 큰 변화 없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세계 2차대전에서도 우유는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전쟁과 더불어 수요가 치솟았다가 종전과 함께 급락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전후의 가격 폭락을 막고자 우유를 직접 사들였다. 대부분은 학교의 점심 프로그램에 쓰였고 일부는 해외로 기부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잉여량을 전부 소화하기 힘들었으니, 남은 우유는 치즈와 분유, 버터 등으로 가공되어 미국 전역 35개주, 150개 창고(동굴)에 저장되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3,000만 파운드(약 1만3,600톤)의 치즈를 저소득층에게 지원함으로써 재고를 줄이려 했지만 허사였다. 1983년까지 잉여 치즈의 양이 30억 파운드(136만 톤)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당시 미국 식약청 관계자는 "치즈를 그냥 바다에 버리는 편이 비용이 덜 들 것이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우유 수매량을 줄이고 재고를 해외에 기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저장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한편, 정부는 농가의 업종 전환도 지원했다. 젖소를 도살 혹은 수출해 사육 중단을 장려했는데 우유 생산량 감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생산은 줄이지 못하지만 소비는 줄어드는 게 우유의 보편적인 문제였다. 1985년, 미국인은 1인당 210파인트(약 200ℓ)의 우유를 소비했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10% 이상 줄어든 양이었다. 캘리포니아 유가공 연합회에서는 분위기를 만회하고자 1993년, '우유 있어?(Got Milk?)' 캠페인을 출범시켰다.
운동선수들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참여하고 현재까지 온갖 밈으로 소비되는 등, 우유 있어? 캠페인은 분명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우유의 소비는 일시적으로만 증가했을 뿐,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었다. 또한 궁극적으로 캘리포니아주 외 지역에서는 화제성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2006~2016년에 우유 생산량은 또 17%나 증가했다. 소비는 감소되고 생산 비용은 증가한다. 결국 우유 생산으로 인한 소득 또한 감소되고 그 결과 대규모의 기업형 농가만 살아남는다. 1992~2017년 사이에 전 미국에서 절반에 이르는 목장이 사라졌으며, 2016년 기준으로 54%의 우유가 1,000두 이상의 젖소를 보유한 목장에서 생산되었다.
세계가 다시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예전처럼 단지 우유만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만 하는 시절도 지났다. 귀리나 아몬드로 만든 대체유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곡물 대체유는 미국 기준 2018년에는 18억5,000만 달러에서 2025년에는 37억5,000만 달러로 세를 불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상기시켜 준다. 우유의 전성기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일정 수준 우유를 참으며 먹어 오기도 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성인의 68%가 유당불내증으로 우유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음이 밝혀졌다. 한국의 경우는 약 85%에 이른다.
물론 마시지 않는다고 우유를 아예 소비하지 않는 건 아니다. 미국의 치즈 소비량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1인당 치즈 소비량은 40lbs(파운드), 18kg으로 1980년에 비해 두 배였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는 건, 치즈의 생산량이 여전히 소비량보다 높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정부는 2,000만 달러(약 235억 원) 상당의 체다치즈를 사들였다. 최대 규모였다. 현재 미국 정부는 약 15억 파운드의 치즈를 미국 전역에 보유하고 있다. 이는 1983년 치즈 보유고가 위기 수준으로 다다랐을 때보다도 45% 많은 수준이다.
우리에게도 치즈가 우유 소비의 최선인데 당장은 쉽지 않다. 국내 유업사의 치즈는 거의 전부 수입산 원료로 만든다. 치즈 자급률은 2014년 4.4%로 정점을 찍었지만 작년에는 고작 2.2%였다. 옆 나라 일본도 치즈 자급률 증가를 통해 우유를 소비하고 있는 가운데, 국산 우유는 치즈에 적합한지조차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우유 소비가 감소되어 걱정이라지만, 그렇다고 유가공 업계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놓고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이스크림만 하더라도 제대로 우유와 크림만 써서 만든 제품이 단 한 종도 없다. 그런 가운데 우유업계 1, 2위인 서울우유와 매일유업은 가공유와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작년 실적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참고 자료: Business Insider / 'The Rise And Fall of Milk' (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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