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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이 던진 화두, '적정한 개발이익'

입력
2021.11.11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7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의 아파트 단지. 뉴스1

지난달 7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의 아파트 단지. 뉴스1

최근 만난 한 부동산개발 사업자는 자신이 쫄딱 망했던 사연을 들려줬다. 시행사를 차려 몇 번의 성공을 거둔 후 자신감이 충만해 서울 외곽에 빌딩을 올리려 달려들었던 시절 얘기였다. 결론은 '안쪽의 나대지를 먼저 매입하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도로변 땅 주인의 말을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대출까지 끌어와 나대지 계약을 마쳤지만 정작 중요한 땅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사이 도로변 땅 주인은 더 비싼 값에 다른 데다 팔아 버린 것이다. 안쪽 나대지만으로는 사업성이 전혀 없어 200억 원 넘게 손해를 입었다. 해당 업자는 “그동안 번 거 다 집어 넣었으니 너무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툴툴댔다.

'성남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에 대해 에둘러 묻자 이런 얘기를 꺼낸 의도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부동산개발의 불확실성이 워낙 크고 민간사업자가 떼돈을 번 대장동 사례는 매우 특수하다는 항변이었다. 한편으로는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후 시행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삐딱한 시선이 불편했을 것이다.

취재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접한 다른 사업자들도 실패 경험을 줄줄이 읊어댔다. 토지 확보 과정의 다양한 난관과 길어지면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예측 불가능한 인허가 절차, 분양 실패 시 '쪽박'을 찰 정도로 막대한 타격 등이 겹치는 레퍼토리였다.

물론 성공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집값이 폭등한 요 몇 년간은 가장 큰 리스크인 분양 걱정을 덜어 성공 확률도 상승했다고 한다. 대장동 개발만큼 천문학적 수익은 아니어도 성공 궤도에만 진입하면 적어도 총 매출의 10% 정도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동산개발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었다.

한 번만 터지면 평생을 먹고 산다는 부동산개발에 특화된 시행사가 국내에 등장한 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다. 대장동 의혹은 20여 년에 불과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보여줬다. 또한 어느 수준까지가 민간이 취할 수 있는 적정한 개발이익인지 사회적 화두를 던졌다.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대장동 개발 같은 민관 공동 사업에서 민간사업자의 이윤율 한도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택지개발촉진법'이 공동사업자 이윤율을 총 사업비의 6%, '산업입지법'이 산업시설용지 분양 이윤율을 조성원가의 15% 내로 못 박은 전례도 있다.

정부도 토지수용이 가능한 민관 공동 도시개발사업 시 민간 이윤율 제한을 추진하고 나섰다. 다만 획일적인 상한선 설정이 아닌 사업별 출자자 협약으로 정하자는 게 차이다. 민간의 사업 의지를 꺾어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민간사업자의 개발이익에 한도가 생기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반 세기 넘게 원주민의 반발과 소송 등이 계속되고 있는 공공의 토지수용 제도는 이번에도 손을 대지 않는다. 대장동의 막대한 개발이익도 공공이란 미명 아래 헐값에 강제로 수용한 토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공기관이 초과이익을 환수해 공공을 위해 쓴다는 취지에 태클을 걸 사람은 없다. 다만 개발이익의 근간인 토지를 내주고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원주민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헌법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 수용 시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아직까지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는 원주민은 본 적이 없다.


김창훈 산업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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